정제산업의 시장구조와 석유제품 가격: 국제 비교

(석유협회보, 2012년 겨울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문춘걸 교수

지난 몇 년간 정부는 단순한 논리에 근거하여 정제산업의 시장구조와 석유제품 가격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정부의 논리에 의거하면, 정제산업은 과점시장이며, 정유사의 과점적 시장지배력 행사로 인하여 석유제품 유통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고, 석유제품 가격이 높고, 가격 수렴현상과 하방경직성이 발생하며, 시장환경 변화에 대하여 가격 비대칭성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정부는 석유제품 유통시장에 제도적 시장개입을 점증적으로 도입해 오고 있다.

첫째, 정제산업이 과점인 것은 우리나라에만 특이한 현상이 전혀 아니다. 정유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116개 국가에 대한 통계를 정유시설 단위로 수록하고 있는 Oil & Gas Journal (October 05, 2011)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유시설 수의 국가별 표본중위값은 2.00, 정유사 수의 국가별 표본중위값은 1.00개로 계산되었다. OECD국가 중 정유시설을 보유한 31개 국가를 대상으로 정유시설의 수와 정유사의 수에 대한 요약통계치를 계산하면, 정유시설 수의 표본중위값은 4.00개이며, 정유사 수의 표본중위값은 2.00개이다. 국토 면적이 광대하고 유전개발의 역사가 긴 미국(124개 정유시설, 55개 정유사)과 러시아(40개 정유시설, 19개 정유사) 등 극단치가 있기는 하지만, 정유시설을 보유한 전 세계의 모든 국가의 정제산업은 과점시장으로 특정화할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정제산업의 생산기술적 특성은 거대한 규모의 장치산업이며, 이로 인하여 과점 시장구조를 가지게 된다. , 정유사의 반경쟁적 행위로 인하여 정제산업이 과점 시장구조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휘발유 평균가격은 일본과 EU의 평균가격보다 낮아

둘째,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생산기술 수준이 외국의 정유사들에 비하여 우월하고 따라서 비용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역내의 일본, 유통 선진국이면서 주요 석유수출국이 밀집해 있는 중동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가깝고 또 일부 국가는 북해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27EU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전 소비자가격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비용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다. 휘발유 세전소비자 가격의 경우, 우리나라의 평균가격이 일본과 EU(가중평균)의 평균가격과 동일하다는 귀무가설이 모두 기각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평균가격은 일본의 평균가격보다 159.43/리터, EU(가중평균)의 평균가격보다 21.30/리터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유 세전 소비자가격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평균가격이 일본과 EU(가중평균)의 평균가격과 동일하다는 귀무가설이 모두 기각되었으며, 일본의 평균가격보다 169.62/리터, EU(가중평균)의 평균가격보다 63.27/리터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한국 정유사들은 외국 정유사에 비하여 생산기술의 우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우월한 가격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우월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생산량의 반 정도를 수출하고 있으며, 201219월의 누적 수출액이 4154천만 달러에 달하며 국가 주요 수출품목 중 1위에 해당한다.

셋째, 석유제품 유통시장에서의 외견상 과점(석유제품 유통시장에서 국내 정유사의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현상, 즉 높은 시장집중도)이 석유제품 유통시장이 과점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구조에 대한 논리적인 판단은 단순하게 기업의 수(또는 시장집중도)뿐만 아니라 국가 간 기술수준 차이, 대외 시장개방도 수준에 따른 잠재적인 경쟁기업의 진입을 고려하여야 한다. 국내외 정유사의 생산기술 수준이 동일하여 평균단가가 동일한 경우라면 석유제품 유통시장에서의 외견상 과점은 실질적 과점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정유사의 생산기술 수준이 다른 국가들의 정유사에 비하여 우월하므로 석유제품 유통시장에서의 외견상 과점은 실질적인 과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석유제품 유통시장의 대외 시장개방도 수준은 국내 정유사에게 역차별적인 수준이었고 이러한 역차별 정도는 지난 몇 년간 더욱 심화되어 왔다. 상당한 수준의 우대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열악한 비용경쟁력으로 인하여 역내 외국 정유사들이 우리나라에 진입하지 않는 것을 국내 정유사가 과점적 시장지배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은 크게 잘못되었다. 우리나라 석유제품 유통시장은 외견상 기준(기업의 수, 시장집중도)에 따라 과점시장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실효적 기준(시장개방도)에 따라 경합시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넷째, 가격의 수렴현상, 하방경직성과 비대칭성 자체가 기업들의 반경쟁적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완전경쟁시장 하에서는 거래비용의 차이를 조정하면 일물일가의 법칙(, 완전한 가격수렴)이 성립한다. 과점 시장구조에서의 치열한 가격경쟁을 모형화한 버트랑모형(Bertrand model)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쟁적과점시장 모형들에서는 동질재에 대해 형성되는 시장가격은 동일하다는 이론적 결론이 도출되어 있다. 개별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고객집단의 존재를 가정하는 독점적 경쟁시장에서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 차이에 따라 가격 격차가 발생하고 그러한 가격 격차는 유지된다. 독점시장에서는 수요탄력성이 상이한 소비자집단 간에 가격차별을 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가격이 책정된다. , 불공정 행위와 전혀 무관하게 다양한 유형의 경쟁적 시장구조 하에서 가격은 동일할 수도 있고 격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 불공정 행위인 담합 하에서도 공조(합의)에 따라 가격이 수렴할 수도 있고 일정한 격차를 유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가격 수렴/격차 현상을 근거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였다고 보는 시각은 경제학적인 근거가 없다. 나아가서, 담합 의심을 받는 기업들 간에 가격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담합의 종기로 판단하는 시각도 경제학적 무지에 해당한다.

완전경쟁시장, 독점시장, 독점적 경쟁시장, 쿠르노(Cournot) 경쟁 하의 과점시장, 버트랑(Bertrand) 경쟁 하의 과점시장, 선도기업-추종기업 관계를 모형화한 스태켈버그(Stackelberg) 과점시장에서는 (한계)비용 하락에 대응하여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발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불공정 행위인 완전한 담합 하에서도 가격의 하방경직성은 발생하지 않는다.

휘발유·정유의 세전 공장도 가격을 분석한 결과 장기적인 가격 비대칭성은 없어

반면 과점 시장구조 하에서 경쟁적 관계에 있는 타 기업의 가격책정에 대응하여 개별 기업들이 민감하게 경쟁적 가격전략을 구사하는 스위지(Sweezy) 과점시장 모형에서는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발생한다. , 완전한 담합 하에서는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발생하지 않는 반면 담합과 전혀 무관한 경쟁적 전략모형인 스위지 과점시장 모형에서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가격의 하방경직성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와는 무관하다. 가격의 하방경직성은 타 경쟁기업에 대한 기업차원의 경쟁전략 구사라는 마케팅 관점에서의 관심 사안에 해당하며, 공정경쟁 관점에서의 관심 사안은 아니다.

282개 상품군에 관한 미국 자료를 분석한 펠츠만(Peltzman, 2000)의 실증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격전이의 비대칭성은 다양한 상품군, 즉 다양한 시장구조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 외국의 이론 및 실증 문헌에서 비대칭성의 발생 원인으로서 시장지배력, 생산량 조정과 재고비용, 메뉴비용, 구매자의 탐색비용, 입지적 우위 등이 검토되었으나 시장지배력 행사로 인하여 가격 비대칭성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한 실증문헌은 지극히 드물다. , 실증적 분석을 수행한 국외 문헌에 의거하면, 가격 비대칭성은 불공정 행위에 기인하기 보다는 기업의 생산, 입지, 마케팅 결정과 소비자의 구매행태에 기인한다. 결론적으로, 비대칭성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다섯째, 우리나라, 일본, 14EU권역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제 석유제품가격과 환율의 변화에 따른 휘발유와 경유의 세전 공장도가격의 비대칭성을 분석한 결과, 모든 국가에서 국내 세전 소비자가격, 국제 석유제품가격, 환율 간에 공적분관계가 존재하여 장기적인 가격 비대칭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단기적인 비대칭성의 존재 여부는 국가와 유종에 따라 혼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의 경우 우리나라와 7EU권역 국가에서, 경유의 경우 우리나라와 4EU권역 국가에서 단기 비대칭성이 있는 것으로 판별되었다.

여섯째, 소비자 복지(경제학에서의 소비자 잉여)의 규모에 본원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가격의 절대적인 수준이다. 이에 대비하여, 단기적인 가격 비대칭성은 시장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발생하는 가격 조정의 일시적인 비대칭 현상에 해당하므로 국민 복지의 규모에는 일시적이고 부차적인 차감요인으로만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는 역내의 일본과 역외의 EU(가중평균) 보다 아주 낮은 세전 소비자가격 수준을 누리고 있으므로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제세공과금의 영향을 제거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유사는 아주 높은 수준의 소비자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가격 비대칭성이 존재하여 시장환경 변화에 대응한 가격조정의 일시적인 비대칭 현상으로 인하여 일시적이고 부차적인 국민 복지 차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국민 복지 수준에서 일시적인 조정기간에 국한하여 발생하는 부차적인 크기의 차감 요인에 해당한다.

일곱째, 2009년도를 기준으로 한국, 일본과 14EU권 국가들의 HHI 지수값을 살펴보면, 한국의 HHI 지수값은 2,765로서 스웨덴의 2,748과 비슷한 수준이며 16개 국가 중에서 제일 높은 지수값에 해당하였다. 정부의 시각과 같이 만약 외견상 시장집중도(HHI)가 시장지배력의 행사를 의미한다면 시장집중도가 높은 국가는 석유제품의 국내 평균가격이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의 시각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석유제품 평균가격 수준과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시장집중도(HHI)의 관계에 대한 실증분석을 수행하였다. 휘발유와 경유 모두에서 선형-선형 함수형태와 로그-로그 함수형태에 무관하게 HHI 지수값은 휘발유의 표본평균치와 경유의 표본평균치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HHI 지수값의 높고 낮음과 휘발유 또는 경유 제품가격의 높고 낮음은 무관한 것을 의미하며, 정유산업의 생산부문에서의 시장집중도가 유통부문에서의 시장지배력 행사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시각이 현시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현시화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유산업의 유통부문의 시장구조가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과점시장이 아니라 실효적으로는 대외시장개방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는 경합시장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고도화 시설투자와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을 통하여 생산기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고 역내에서 제일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싱가폴 현물시장의 제품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실제적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 수준의 세전 소비자가격을 형성시켜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제세공과금의 영향을 제거한다면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수준의 소비자 복지를 구현시키고 있다. 정제산업이 과점 시장구조인 것을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며, 대외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석유제품 유통시장이 외견상 과점을 유지하는 것은 국내 정유사의 생산기술적 우위에 기인하며, 가격의 수렴현상, 하방경직성과 비대칭성이 불공정 행위에 기인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 정제산업과 석유제품 유통시장에 대한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이에 근거한 제도적 개입으로 국민들은 정유사가 부도덕하다는 오해를 하게 되며, 장기간 정유사가 꾸준히 축적해 온 대국민 신뢰도를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국내 정유사에 대한 역차별적인 제도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조달한 소중한 재원을 경쟁력이 떨어지는 외국 기업에게 보조하는 경로에 해당한다. 정부는 정제산업과 석유제품 유통시장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시정하고, 국내 정유사에 대한 역차별적인 제도를 정상화하여야 장단기적인 국내외 시장신호에 대응하여 국내 정유사가 최적적인 경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대외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점증적인 압박과 제도적 개입이 정제산업에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석유제품이 주요수출품목 중 1위 품목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