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니meets서울] 베토벤 교향곡 7번 meets 창덕궁 후원
싱가포르 애프터눈티 트레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첫날 저녁을 쉽게 잊지 못한다. 싱가포르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 교환학생으로 함께 가게 된 친구들하고 함께 대한항공을 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곳은 쾌적하고 시원했다. 그러나 모든 수속을 끝마치고 택시를 타기 위해 슬라이딩 도어를 지나 공항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우리 모두는 일동 차렷하고 멈출 수 밖에 없었다. 7월의 싱가포르는 한참 더워질 시기였고 숨이 막힐 정도로 덥고 습한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적도의 날씨에 익숙해져야 했다. 새벽 4시가 되어도 밖을 걸어다니다 보면 땀이 나기 마련이었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기숙사 창문 너머로 순식간에 물이 차고 또 물이 마르는 운동장을 멍하니 본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곳이 즐거웠던 이유는 20대가 되고난 뒤 거의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외국에서의 생활' 이라는 독특함에서 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제대로 영국 고급문화를 경험하고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에는 곳곳에 영국문화의 잔재가 남아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돈이 많지 않은 교환학생들이라 최대한 돈을 아끼려 식사는 학교 내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기 일쑤였고 한끼에 1500원 정도하는 챠슈덮밥과 인도커리요리는 질릴 정도로 많이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 한달에 한번씩 생활비가 온 날이면 ATM 기계 옆에 있던 버거킹에서 빅맥을 시켜서 먹는게 가끔의 특별 식사였다. 물론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클럽도 가고 열심히 좋은 것도 먹고 다니고 했지만, 유달리 나는 그런데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출국을 앞둔 어느 날 옆 방에 사는 중국인 친구 윌리엄과 함께 시내로 나가 영국식 애프터눈티를 먹기로 결심하였다. 영국식 문화 모두를 다 경험해보지는 못해도 영국식 애프터눈티는 꼭 마셔보고 싶었던 것이다. 시내 리츠칼텐 호텔에 있는 곳이라 발이 보이는 샌들이나 반바지는 안될 것 같아서 더운 날씨에도 꼭꼭 챙겨입고 야심차게 리츠칼텐 호텔에 있는 치울리 라운지(Chihuly Lounge)로 향했다. 그러나 호텔 라운지에 도착하여 식당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영국식 상류층문화를 즐겨보겠다는 결심은 슬몃 꺾이고 말았다. 입구 근처에 있는 메뉴를 보니 어리버리한 외국인 학생들이 들어가서 자신있게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하기엔 그곳은 너무나 복잡한 세계처럼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발걸음을 돌렸던 이유는 어떤 트레이 때문이었다. 기웃기웃 안을 보니 어느 테이블에는 3단 트레이를 놓고 가족 5명이 차와 다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트레이에는 온갖 종류의 케이크가 가득 놓여져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제대로 된 영국식 애프터눈티의 한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 둘이서 그런 케이크를 전부 먹을 자신은 도통 없었다. 결국 나와 윌리엄은 호텔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에서 사천요리를 배터지게 먹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영국식 애프터눈티를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싱가포르 로얄 코펜하겐 매장에서 맛있는 홍차 한 잔과 레몬머랭파이를 즐길 때도 있었고, 한국에서도 이화여대 정문 근처에 있는 홍차 전문점에서 애프터눈티를 종종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종종 그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던 그 거대한 케이크 트레이가 생각나곤 했다. 단순히 어리버리한 남자애들 두 명이 차마 그 고급문화의 현장으로 들어가기 어려웠던 부끄러움만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애프터눈티는 굉장히 장중하고 느린 호흡이었다. 애피타이저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간단한 다과를 즐기며 본격적으로 홍차나 그린티를 즐기며 오래 담소를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 등장한 거대한 케이크 트레이는 맛있는 미(美)의 콜렉션이었지만 애프터눈티라는 흐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 거대한 트레이는 분명 가장 맛있는 케이크의 집합이었다. 그러나 어린 내 눈에는 그 트레이 속에 담긴 각양각색의 케이크들로부터 이 애프터눈티와의 맥락, 연유, 부분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종종 그 트레이를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기대하고 꿈꾸었던 애프터눈티라는 미의 향연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조화때문이었다. 미(美)란 아룸다움의 집합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연속이다, 라고 믿었다.
아름다움의 모음곡이 아닌 것으로
아름다움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선율과 같이 아름다움의 연속된 표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창덕궁 후원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 후원을 처음 찾았던 것이 2004년 가을이었다. 그해 5월, 28년만에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후원은 가장 핫한 데이트코스 중 하나였고 대학교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 후원을 찾았다. 그때는 하도 오랫만에 모습을 드러낸 정원이라 그런지 창덕궁 비원이라 부르곤 했다. 낙엽이 많이 쌓인 후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근정전, 경회루처럼 거대한 건축물로 가득한 경복궁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해설해주는 분을 따라서 후원을 한시간동안 돌았다. 작은 연못의 경치가 아름다웠던 부용정, 소박한 멋이 인상적이었던 의두합, 그 문 밑을 드나들면 무병장수 한다는 불로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연못이었던 애련지 등을 지나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옥류천에 이르기까지.. 처음 찾은 후원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의 색깔이 저마다 달랐다. 어떤 것은 꼭 일본의 정원처럼 아기자기한 멋이 있었고 어떤 것은 별다른 장식없이 단아하고 소박하지만 그 자체가 이곳 후원의 느낌과 어울렸다.
이 어울림이란 단어가 후원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었다. 한시간 동안 돌아보며 보았던 부용정, 불로문, 애련지, 옥류천과 같은 특색있는 사이트도 물론이었지만 관광객이 드나드는 산책로, 중간중간 놓여져있는 돌 조각들, 울창한 소나무들이 모두 후원이 내뿜는 단아한 매력 속으로 합쳐져 하나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하나의 느낌은 결코 단순히 발산하지 않고 결국 하나의 원점으로 수렴하였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보다 어려운 것은 그 표현의 방향이 결국 나에게로 수렴하는 원점으로의 회귀였다.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내게로 수렴하는 것 모두 미(美)에 대한 치열한 욕망의 산물들이지만, 발산은 감정의 전달이었고 수렴은 감정의 소통이었다. 창덕궁 후원 곳곳의 여러 유적들이 내게 건네는 말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았고 그 단어는 "이래야 한다" 는 당위가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다" 라는 존재의 단어였다. 때문에 그곳을 지나는 우리들 역시 후원을 즐기며 결코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았고 감히 소란스러운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숨죽이고 가만히 있는 후원을 바라보며 우리가 먼저 다가가 조용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게되었다. 한시간동안 창덕궁 후원 한바퀴를 돌아보며 첫 시작점이었던 돈화문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원형 동선 위에서, 섣불리 아름다움을 내지르지 않는 후원의 여러 속성들은 스스로 어울렸고 그들과 우리 관광객이 어울렸다. 하나의 선(線)으로 어울리며 밖이 아닌 안으로 수렴하는 동질의 아름다움들.. 그것이 창덕궁 후원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선율들
한여름 날씨가 시작되었던 여름 날에, 후원을 찾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음악은 베토벤의 교향곡 중 7번 곡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베토벤이 마지막 교향곡을 작곡한 뒤 4년만에 1812년 세상에 내놓은 역동적인 리듬의 교향곡이다.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 라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 중 단연 9번 교향곡 <합창>이 가장 잘 알려져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에서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지휘자인 주인공이 초연으로 이 7번 교향곡을 공연하기도 하여 젊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교향곡이다.
나는 1962년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음반을 들고 창덕궁 후원을 찾았다. 녹음은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한 모양이었다.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한 현악기의 연주가 압권인 1악장을 지나, 아름다운 멜로디로 유명한 2악장과 3악장을 지나면 더욱 강력한 리듬과 역동성으로 쉴 새 없이 4악장의 선율이 흘러간다. 10년 가까이 전 처음 찾은 창덕궁 후원에서 받은 감동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이 들려주는 감동은 그 느낌이 비슷했다. 이 곡은 무엇보다 강렬하고 아름답다. 멜로디 전체를 통사하여 듣지 않고 1악장이나 4악장의 일부를 들어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제 1,2 바이올린이 밀어올리는 전체의 멜로디, 중간중간 금관악기가 리드하는 선율, 악장 내내 박자를 이끌어가는 드럼의 리드미컬한 조율은 어느 교향곡에 견주어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이는 싱가포르의 케이크 트레이와는 다른 아름다움이다. 단지 아름다운 것을 모아놓은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1악장에서 4악장에 이르기까지 전체의 스토리를 각 악장과 가락은 잘 따라오고 있으며 그래서 여러개의 아름다움을 모아놓은 조악함이 아니라 하나의 긴 선을 늘여놓은 것 같은 연속성이 느껴진다. 더불어 이 교향곡이 9번 <합창>과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선율이 단지 나에게서 밖으로 던져지는 것보다는, 결국 다시 원점으로 수렴되는 큰 원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음 하나하나가 그냥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조심스럽게 연주되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당위가 아닌 존재의 음악이었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그 강렬한 음표들이 이끌어가는 방향성에 몸을 맡기고 거칠게 달려가는 것도 좋았지만.. 7번과 같이 천천히 큰 원을 그려가는 것도 좋았다.
창덕궁 후원 해설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1악장의 거대한 감동은 어느덧 옥류천을 지나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오며 4악장의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좋았고 반가웠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대다수의 예술, 미술, 음악은 처음 시작점과 끝의 도착점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멀리 달아났지만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오는 선율들, 그 짧지 않은 여정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분출되는 아름다움이 강제적이지 않고 스스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더욱 그 원점으로 함께 회귀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창덕궁 후원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닮았다. 여름의 시작이 더운 6월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