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의 관동대 교수
기름 값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연일,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이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더니, 2천원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이미 훌쩍 넘어 버렸다. 휘발유, 경유, 등유, LPG, 너나 할 것 없이 유가 고공행진 대열에 합류했다. LPG가 최고가를 경신했을 때, 택시운전자는 비명을 지르고 경유도 지금 휘발유가의 92%수준에 육박했다니, 화물 운전자의 표정 또한, 일그러져 가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 모든 분야가 난리다. 이제 서민들은 물가인상에 지칠 대로 지쳤다.
게다나 국제유가가 출렁일 때마다 서민들 가슴은 철렁한다. 중동 정세 불안이 국제유가 상승을 여전히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이란의 핵문제가 국제유가를 더 꼬이게 하고 있다고, 언론은 한 목소리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이란 산 원유 수입량을 줄이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이란, 그리고 이스라엘 중 어느 하나가 이성을 잃게 된다면, 곧장 국제유가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핵문제라지만, 사실상 미국이 국제유가 변동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논리가 맞는다면, 미국 역시 우리나라 서민에게 비싼 휘발유 값을 치루라고 압박하는 셈이 된다.
유가대란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데, 정부만 천하태평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나서서 민생경제를 단단히 챙겨야 하는 데, 딴 곳에만 정신 팔린 듯하다. 정부가 기름 값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이란 게, 고작 알뜰주유소 뿐인데, 이것만으로 당분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알뜰주유소는 근본적인 처방이 못된다. 기름 값 인하효과보다는 저렴한 주유소 앞에서 벌어지는 진풍경 대기행렬의 시간낭비에 따른, 사회비용이 더 크다고 본다. 이젠 일반주유소와의 가격격차마저 줄어들어, 점점 알뜰 주유소를 소비자가 외면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유가 안정화를 위해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기존 정유 4사 외 삼성토탈을 제5의 석유제품 공급자로 시장에 참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즉, 석유 시장에 새로운 경쟁사를 추가시켜 유통부문의 다각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길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삼성토탈이 생산해 내는 휘발유량은 미미하고 정유산업 마진도 저조한 가운데, 이 같은 조치가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 오기보다는, 꺼져가는 알뜰주유소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지금으로선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임기응변적 처방보다는 유류세 인하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유류세를 대폭 내려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름 값을 떨어뜨려야 한다. 운전자가 주유소에서 10만원 휘발유를 넣으면 이중 4만4000원이 세금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세금이 많이 붙는 제품을 찾아 볼 수가 없다. 30억 짜리 초호화 주택을 구매하더라도 세금이 5% 미만인 점과 비교하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크게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가 포함된다. 이중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는 종량세이므로 국제 제품가의 움직임에 상관없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종가세이므로 기름 값이 오르면 따라 오르는 변동세금이다. 또한, 세금에 세금이 붙는 희한한 옥상옥 세금인 셈이다. 유류세 중에 가장 불합리한 부분이 부가가치세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정부가 가산 탄력세율을 붙이며 휘발유 값을 부채질 했다. 탄력세는 정부가 국회 동의를 얻지 않고도 최대 30% 범위에서 세율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정부가 유류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20조원 가까이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돈의 매력에 정부는 늘 만취한 상태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어깃장 유가정책들 때문에 유류세 인하 목소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제 국제유가 마저 크게 뛰게 되면, 국내 기름 값 폭등은 불 보듯 뻔하고 그땐, 유류세를 인하해도, 아무런 약발이 없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류세 인하에 대한 국민의 소리에 딴청을 부려왔다. 예를 들어 우리의 유류세와 기름 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려왔다. 가처분 국민소득을 대비해서 보면, 우리의 기름 값은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수준이다.
원유가격 폭등 덕에 유류세 수입이 늘어났다고 표정 관리하는 정부를 서민들이 성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게 두렵지 아니한가? 서민이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금수입 대박을 누리고 공무원 월급 올려주면서, 정유사 탓을 하거나 서민을 상대로 “에너지를 절약하여야 하는 데, 왜 안 하느냐”하고 가르치려든다면, 국민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늘 똑같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유류세를 낮출 경우 낭비적인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름은 일반적인 소비재와 달리 가격이 올라갈 때 감소하는 수요는 적지만,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특수 소비재이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올해 들어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기름 수요가 줄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
상품의 가격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두 가지로 밖에 설명되질 않는다. 우선 계속적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명품의 경우에 통하는 얘기다.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다’ 이런 심리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A.H. Maslow)가 말하는 5단계 욕구설 중 4번째에 해당하는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인 자기만족 내지는 과시욕구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기펜(Giffen)의 역설’ 현상이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는 서민들에게 만일 정부가 버스비를 올리면, 버스 수요가 줄 것 같지만, 오히려 비싼 택시의 소비를 줄인다. 상대적으로 버스에 수요가 더 집중된다는 논리다. 지금의 기름 값 현상은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즉,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적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부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과거 국제유가와 휘발유 소비량의 추이를 보면, 이동평균선상에서, 둘 다 장기적인 상승 곡선을 보인다. 유가가 휘발유 소비를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얘기다. 만일 유가폭등이 일어났을 때, 단기적으로 소비가 감소할 수는 있겠으나, 이런 현상은 오래 가질 않는다. 수송용 연료가 이젠 생활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적응과 충격흡수라는 과정을 거쳐 이내 수요 감소분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여태껏 기름 값이 엄청나게 올랐지만 사람들이 차를 덜 쓰게 만들 만큼의 임계점에 오진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름 값 문제의 본질은 첫째가 터무니없는 유류세이고 둘째가 잘못된 환율정책이다. 둘 다, 정부 탓이다. 이것을 정부가 해결하지 않고 다른 탓만 한다면 당연히 실효가 없게 마련이다
유류세에 이어 환율 얘기도 해보자. 기름 값은 또한 환율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환율이 900원 하다가 1100원 하면 가만히 앉아서 200원을 더 내는 셈이 아닌가. 이번 정부는 수출하는 대기업을 생각해서 고환율 정책을 썼다. 누구를 위하여 서민들은 지난 4년간 휘발유 값을 200원 더 비싸게 지불해야 했던가?
항간에는 유력인사가 “일본에 비해 우리 유가는 왜 이렇게 치솟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서민들이 물가인상에 지칠 대로 지친 마당에 이 발언은 모두를 아연케 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번 정부는 수출하는 대기업을 생각해서 고환율 정책을 썼다. 그와 달리 일본 환율정책은 엔고였다. 서로 다른 환율정책이, 일본은 서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우리는 수출대기업에 유리하게 작용됐다. 그리고 일본은 소득 대비 휘발유 유류세 부담이 우리나라의 4분의 1에 불과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서민을 위해서라면, 우선적으로 환율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러면 휘발유 값은 2000원에서 1800원으로 떨어진다. 장차 우리나라의 무역은 수입이 늘고 국제유가가 오를 것이 명백하게 예상되기에 환율을 내리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고환율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처사다. 서민 주머니 탈탈 털어 수출대기업 금고 채워주는 고환율 정책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환율을 내려서 기름 값을 낮춰주는 것이 양심 있는 행동이다.
대중교통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고환율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택시 기사의 하소연이 누구 때문인지, 버스회사의 적자가 누구 때문인지를 따지기 전에 불합리한 환율 구조부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중교통의 운영자는 유류세 탓을 지적하기는 해도, 사실 환율 때문에도 자신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다. 환율 인하가 경제전반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세금도 250원정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그 후에, 유통구조에서도 거품을 빼고 가격 인하에 동참하면, 휘발유 값은 1450원이 된다. 환율 인하, 세금 인하, 대기업과 주유소의 윤리경영 동참, 이게 유가대란 대비에 대한 정답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기름 값이 비싼 이유 중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부 정책 탓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환골 탈퇴하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이제 유류세 인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휘발유 같은 차량연료는 법으로 탄력세율을 적용하게 되어 있다. 즉, 유가가 뛰거나 서민이 고통을 받는 등, 경기변동의 원인이 발생했을 때, 30%정도 낮출 수가 있는 것이다. 유류세를 내리기 위해선, 국제유가가 더 뛰어야한다느니, 서민의 고통이 아직은 극에 달하지 않다느니 식으로 정부가 법을 무시한 채, 고집을 부리는 한, 유가대란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환율을 정상화하고 휘발유 세금을 대폭 인하하여야 한다. 아울러 택시와 버스에 들어가는 유류에도 세금면제를 단행해야, 지독한 파국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유가정책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하루빨리 선진화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