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없는 기름값 논쟁보다 필요한 것은"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연초부터 기름값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연말 리터(ℓ)당 1930원 초반까지 떨어졌던 휘발유(전국 주유소 평균) 가격은 1월 중순 1950원대로 오르더니 어느새 2000원을 돌파했다. 
 
휘발유 뿐 아니다. 2008년말 1268원이었던 경유는 올 2월말 1840원을 넘었고 난방용 실내등유도 같은 기간 924원에서 1400원으로 올랐다. 세 유종 모두 사상 최고가인데, 추이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1년간 정부와 정유업계에 큰 부담을 안겼던 기름값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소비자시민모임은 1월초 국내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휘발유 가격 상승폭보다 기름값을 더 올렸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했다. 지난해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을 조사해 보니 국제가에 비해 공장도 가격은 리터당 평균 25원, 주유소 판매가격은 50원 더 인상됐다는 것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2005년 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분석해보니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국내가격이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올랐고 반대의 경우에는 하락폭이 적었다고 했다. 정작 정유업계는 "할 말이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시모와 삼성경제연구소 모두 기본전제를 잘못 설정한 탓에 분석에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시모는 1월초와 12월말의 가격을 비교했는데, 분석기간을 1주일씩만 앞뒤로 변경하면 오히려 국내가격이 국제가보다 덜 올렸다는 결과가 나온다. 기간을 앞당기면 내수가격이 11원 이상 싸고, 늦추면 29원 저렴하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미스매칭 문제가 지적된다.

휘발유는 싱가포르 석유거래소에서 결정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데, 비교대상을 원유로 잡으니 왜곡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정유업계의 설명이다. 소비자 단체 등의 문제제기와 업계의 해명과 진실공방이 되풀이된 건 지난 1년간 수없이 반복된 현상이다.

휘발유를 대체할 연료가 일반화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풍경이다.지난해 정유업계가 해외시장에서 올린 수출총액(석유제품)은 519억8600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반도체(508억8100만달러) 자동차(409억2700만달러)는 철강(492억2400만달러) 등 전통적인 효자산업을 크게 앞지른 수치다. 수출품목 1위인 선박(545억3000만달러)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석유제품을 보면 원유 도입액 대비 수출 비중이 2010년 44.9%에서 2011년 51.3%로 15% 가까이 늘었다. 사상 처음 원유 도입액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내다 팔았다는 의미도 있다. 후방산업까지 생각하면 정유업계가 국내경제 활성화에 미친 영향은 더욱 커보인다.

 

후방산업까지 생각하면 정유업계가 국내경제 활성화에 미친 영향은 더욱 커

원유를 정제해 만든 화학공업 제품 수출액은 596억2900만달러로 전년대비 25.6% 증가했다. 이 밖에 고무타이어와 튜브(44억3600만달러) 직물(63억5600만달러) 의류(18억3700만달러) 등도 연관 산업 중 하나다. 부수효과를 고려하면 한국은 원유를 수입한 것 이상의 수출실적을 낸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산 휘발유는 또 환경오염물질 배출, 연비 등에서 '세계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 프리미엄급 휘발유는 한국에서 '보통' 수준이다. 휘발유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갖는 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휘발유 기준 황함량 10ppm, 방향족화합물 25%, 벤젠함량 0.8%, 올레핀함량 6% 이하 등)인데 한국은 이보다 잣대가 더 높다.
 
정유사들의 제품 수준은 간단치 않다. 지난해 7월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4사의 휘발유의 황 함유량은 4ppm에 불과했고, 벤젠함유량은 0.4%에 지나지 않았다. 올레핀과 방향족화합물도 각각 11~12%, 12~14%에 그쳤다.

휘발유 품질만큼은 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얘기다. 비교대상으로 꼽히는 일본산 휘발유는 환경오염과 관련한 적잖은 항목이 국내기준을 초과한다.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등 배기가스는 국산보다 10~50%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업계는 IMF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 때도 설비확충에 수 조원을 쏟아 부었고 첨단기술 개발에도 힘써 온데 대한 평가가 인색한데 대해 서운해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상대적으로 국내가격이 비싼 편 아닌데, 그 원인을 엉뚱하게 정유사로 돌리는 일이 번번하니 그럴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S-OIL 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2.1%를 기록했다.국내 제조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 6.9%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정부압박에 못 이겨 지난해 상반기 기름값을 내렸던 여파가 컸다. 정유사 이익률은 2010년 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GS칼텍스와 S-OIL은 1.7%, 1.9%로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상최대 매출액과 수출실적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 CEO는 "차라리 해외수출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토로했다. 답이 없는 가격논쟁보다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정유업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