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세계는 자원확보 전쟁중

석유와 국제정치

글·김재두|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석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에너지문제, 특히 석유확보와 안정적 공급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요한 명제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이라크전쟁을 전후하여 독일, 프랑스등 유럽 주요국가들과 미국간에 나타난 갈등, 시베리아가스전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대한 경쟁적 외교강화 움직임, 아프리카의 전략적 가치 부상 등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석유라는 단어를 배제하고는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복잡한 논리적 분석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세계 주요국가의 지도자들이 최근 어느나라를 왜 방문했는가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 보면 “석유가 이들을 움직이게 했다”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트루만대통령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 아프리카를 방문한 사람은 지미 카터, 빌 클린턴 前 대통령과 現 부시대통령뿐이다. 이들의 방문목적은 여러 가지 표면적 이유로 나타나지만 초점은 에너지확보에 맞추어져 있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역시 2003 9월 아프리카국가들에 대하여 10억달러의 무상원조와 30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탕감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2004년초 이집트와 알제리등을 순방하면서 아프리카 31개국에 대한 13억달러 규모의 부채탕감을 약속했다.

석유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이러한 집념은 최근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별국가마다 나름대로 꾸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송유관공사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 경쟁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일일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고이즈미총리와 후진타오주석은 연쇄적으로 푸틴대통령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한번씩 방문할 때 마다 송유관건설비용 및 기타 서비스제공 명목의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쟁양상을 보여왔다. 앙가르스크-나홋까를 잇는 일본의 극동라인은 총연장 3800km에 달하는 대공사로서 약 50억달러에 달하는 공사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일본은 공사비외에 탐사 및 시추에 소요되는 별도의 개발비용 100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시베리아에서는 중국이 판정패한 셈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자원경쟁사례는 앞으로도 숱하게 많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 천연가스개발 프로젝트건은 중국이 일본에게 일격을 가한 사례인데 2003년말 미쓰이물산은 동 프로젝트 지분 10.7%를 영국으로부터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은 이중 일부를 먼저 선점하였다.

석유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이러한 집념은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별국가마다 나름대로 꾸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냉전시대이던 1979년 당시 카터 미대통령은 “에너지안보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현존하는 명백한 현존위기의 문제이다”라고 진단하였다. 재임당시 인권외교를 기치에 내걸었고 지금도 중요한 고비마다 국제문제의 막힌 고리를 푸는 역할을 하는 카터 전대통령이 탈냉전이후 국제사회의 변화가 국가간의 경제중심적 전략이 충돌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사실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결단에 의해 미국은 페르시아만에 대한 안보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하였고 오늘날 미국은 과거의 결단에 의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지도부의 현실인식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나타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시절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1999년에는 하원의 발의로 석유수급상의 취약점을 보완하자는 SAFE 2001(Securing Americas Future Energy Act)를 통과시켰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개인적으로 석유문제에 정통하고 관련기업의 경험이 많은 참모진을 거느린 현 부시대통령은 취임한지 6일만에 국가안보차원에서의 에너지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였다. 2001 5월 미국 에너지정책 개발그룹은 NEP(National Energy Report)를 통해 “에너지안보를 미국의 통상 및 외교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둘 것을 건의합니다”라고 대통령에게 조언한바 있다.

상기 보고서가 국가차원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했다면 민간차원에서는 미국 에너지협회(USEA: United States Energy Association)가 중심이 되어 “9.11 이후의 미국 에너지안보”( National Energy Security Post 9/11, 2002 6)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미국 에너지협회의 보고서는 전략적 목표제시보다 에너지 자체의 문제에 더 비중을 두고 있으며 에너지안보의 핵심원칙으로 연료원의 다양성, 경제적 효율성, 가속화된 혁신과 연구개발, 긴급계획 및 비상시 대비,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환경적 목표간의 균형등을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외교 경쟁

중동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카스피해 지역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요한 개발 참여의지는 이미 다양한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져 있다. 일본은 2004년에 들어서 이란 최대의 아자데간유전 개발권확보 및 시베리아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등에서 성공했지만 중국 역시 수단의 유전구입은 물론 2004 1월 사우디와 30억달러에 달하는 유전개발계약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대한 경쟁적인 외교 공세는 아직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하듯 아프리카 역시 미국의 접근 노력은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에 작성된 국방기획지침(DPG: Defence Planning Guidance)이라는 비밀문서의 일부가 2003년 초 뉴욕 타임즈에 유출된 사건이 발생한바 있다. 이 비밀문서는 현 울포위츠 부장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동 문서는 향후 국제사회에서 자원확보에 대한 경쟁이 노골화되는 작금의 국제상황에서 누가 아프리카의 자원에 대한 접근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 대단히 중요한 안보상의 분수령이 될것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직간접적인 투자를 국가안보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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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대응하고 경쟁에서 패배하면 결국 국가의 종합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며
그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적 부담의 수준을 떠나 대외적 종속문제까지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문서가 특정 국가의 행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방문, 각 부처장관들의 정례적인 협상창구 개설, 사하라 사막 이남 30개 이상국가들에 대한 군사훈련과 각종 지원, 민간 군사기업들에 의한 주요 자원에 대한 선점 전략등이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활동외에도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외교강화를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일 예를 들어 2003 회계년도에 미국은 국제적십자사에 1 5천만달러를 출연하였지만 2004년 초에도 7600만 달러를 다시 출연하였다. 중요한 것은 출연액의 절반 이상을 아프리카에 사용하도록 조치하였다는 점인데 2004년 출연액의 경우 주로 수단, 콩고, 라이베리아 및 이디오피아등에 사용되고 있다.

유럽국가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오랜 식민지 운영경험이 많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상당수 아프리카국가들은 민간 및 군사분야에서 프랑스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간 부분이 많으며 심지어 파리의 야채시장은 흑인들이 석권했다고 할 정도로 많은 교류가 있다. 그런 프랑스가 이라크전에 대해 오랜 대서양동맹의 분열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대립한 것은 중동에서 밀리면 아프리카에서도 밀린다는 위기의식이 발동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현재 프랑스는 아프리카북부 지역국가들에 대한 군사외교와 자원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독일 역시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강화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2004 3월에는 나이지리아와 석유 부문외에도 농업, 관광, 광물자원개발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함께하는데 합의하였다.

중국과 일본의 경쟁은 아프리카지역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며 2004 3월 한달동안의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그 치열한 자원선점의 의지를 읽기에 충분하다. 일본은 앙골라에 대하여 2005년까지 유엔아동교육기금(UNICEF)을 통해 420만달러를 출연하였으며 우간다가 일본에게 지고 있는 5700만달러의 부채를 추가로 탕감하기로 합의하였다. 모잠비크에 대해서는 지뢰제거를 위해 8만달러를 지원하면서 학교 등 사회간접시설의 무상지원도 약속하였다. 카메룬에 대해서는 무상으로 기 약속된 트럭들을 인도하였고 탄자니아에 대해서는 1100만달러의 부채탕감을 약속하였다.

중국 역시 라이베리아에 55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하였으며 케냐에 대해서는 도로건설, 병원 및 학교 건립기금 출연, 체육교류 강화 등을 약속했고 가나와는 도로건설을 포함한 사회 각분야의 협력강화, 남아프리카에 대해서는 항만시설공사에 대한 지원등을 약속하였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는 200만달러의 무이자 차관을 제공하였으며 시에라리온에 대해서는 무장 순시선을 무상공여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국과 일본의 경쟁적인 對아프리카 외교경쟁의 한단면을 나타내는데 불과하지만 불과 한달사이에 벌어진 사안들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얼마나 에너지안보, 더 나아가 자원안보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하는가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경쟁 양상에서 비교적 덜 두드러지는 국가는 러시아이다. 러시아의 경우는 국내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만 하더라도 가장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는 형편이며 인접한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이라크같은 중동국가들에 대한 개발권 확보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다급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오일기업들이 해외진출에 등한한 것은 아니며 한국의 주변 4강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한국의 나아갈 길

위에서 거론된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정도나 인식의 확산면에서도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원인중 가장 기본적인 점은 북한의 현존위협이라는 특이한 분단상황 때문에 여전히 경제중심적 국가전략이 노골화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논함에 있어 군사적 위협이 여전히 경제분야에 비해 상위의 가치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석유문제는 산업자원부 소관이다”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다. 이는 석유가 국가안보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에너지로 인식되는 한 당연한 결과이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원자재 품귀현상 때문에 산업현장이 정지되는 상황에서도 종합적인 안보차원에서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석유문제가 국가안보차원에서 다루어지면 정부 부처간의 대단히 유기적인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이 요구되는데 협조와 양보라는 행태에 익숙치 않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에너지안보를 국가안보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석유문제가 국가안보차원에서 다루어지게 되면 현재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동맹의 재편과 논의구조의 신설, 다양한 수단의 보유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강대국 및 기존 동맹국 위주로 이루어지던 군사외교의 대상국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별로 인연이 없던 국가들이 국가적 필요성에 의해 첨병의 역할로 우선 투입될 가능성이 많으며 보다 다양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에 대한 소요가 제기될 것이다. 논의구조와 관련하여 과거에는 한자리에 앉는 기회조차 드물었던 정보기관과 외교 및 안보부처, 통상 및 경제부처가 한자리에 앉아 정보의 공유를 하고 어떤 분야가 먼저 들어가고 후속조치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비교적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조직개편과 인력양성분야에도 영향을 미쳐서 학문분야에서 학제간 연구가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듯 정부 부처간의 인식의 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일정 단계에 이르면 기존의 수단이 가지는 한계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며 비근한 예로는 해외 분쟁에 투입하기 위한 특정 목적의 부대창설과 해상수송로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보강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이 테러와 사이버, 해외파병 등 특정 목적부대를 창설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연유한다. 중국 역시 군사외교분야의 인재양성에는 우선적인 투자를 하면서 민간외교와 유기적인 협조를 하고 있다최근 단행된 재외공관장인사에서 터키와 나이지리아의 사례가 눈길을 끈적이 있다. 터키의 경우는 오랫동안 군사외교의 일선에서 경험이 축적된 인사가 임명되었고 나이지리아의 경우는 에너지문제로 평생을 보낸 전문가가 임명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러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석유가 국제사회에서 가지는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물론 위에서 거론된 사항등은 인식의 전환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제도적 변화는 있되 내면의 인식변화는 미진한 경우도 있으므로 에너지안보에 대한 인식확산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본다. 더불어 우리보다 여건이 좋은 국가들에 비해 우리가 출발을 늦게 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늦게 대응하고 경쟁에서 패배하면 결국 국가의 종합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며 그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적 부담의 수준을 떠나 대외적 종속문제까지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이라크전쟁을 두고 궁극적 목표는 자신들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이런 점에 기인한다. 일본과 중국이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는 현실에서 강건너 불구경과 후발주자 특유의 순발력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 하는 점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