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갖는 공간엔 사랑이 찾아온다
-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탐방
황정운
SK에너지 에너지정책팀 사원
저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는 적록색약 때문에 어려서부터 남모를 고민이 많았습니다. 공원에서 판매하는 솜사탕을 보더라도 저게 무슨 색인지 구별을 못하고, 그냥 뿌연 회색으로 보일 뿐이었죠.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싶어 대학에서부터 조금씩 디자인과 색상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 사회에 나와서는 서울시 시민기자로 서울 곳곳의 디자인에 대해 취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를 하나하나 돌아보며 블로그에 에세이를 지금껏 연재해오고 있었는데 이 작업이 저도 모르게 취미 이상의 큰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찾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였는데, “정말 예술이라는 게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2010년 8월 14일, 저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효자동 청운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서울 농학교와 맹학교를 찾아가는 길이었죠. 농학교와 맹학교는 말 그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보거나 듣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예술 작품을 만들어서 학교 담벼락에 전시하였다는데, 그 예술 작품은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작년 봄부터 지금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화두로 삼고 공부하였던 단어입니다. 서울시에서는 대략 2006년부터 서울시 곳곳에 예술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라는 테마를 구현하기 위해 시내 곳곳에 디자인 작품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시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他 하는 프로젝트 시작
이 프로젝트는 점점 거대해져서 더욱 많은 아티스트들이 서울시를 보다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변화하려는 데 기꺼이 동참하였으며, 처음에는 단순히 예술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에 지나지 않던 프로젝트의 성격 역시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 선정도 더욱 섬세해지고, 더욱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소통의 방식으로 변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의 하나가 바로 그 맹학교, 농학교에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고백하는데 ㅤㄱㅜㅊ은 효자동 거리를 걸어가는 제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만들어놓은 타일 몇 조각이 어떻게 예술과 디자인 작품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런 불편한 생각을 분명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담벼락에 걸려있는 그들의 작품을 둘러본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은 서울농학교 담에 도자기로 타일을 만들어 붙여 넣고, 그 위에 학생들의 생각을 담은 글과 그림을 적어 넣은 비교적 간단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한 번 그 글귀와 그림을 읽다보면 도저히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깊은 세계가 그 안에 분명히 있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혹은 우리와 다르다 하여 어여삐 여기는 값싼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으나, 때로 말을 하지 못한다 하여 그 안에 담긴 생각이 우리와 같을 것인가에 대한 편견을 나는 그 작품을 만지며 조각조각 깨버릴 수 있었지 않습니까?.
"감정을 가진 사람은 사랑이 다가온다"(권영성), "내 상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내 안에 흐르는 삶도 발견하게 되리라"(목혜미), "꽃잎을 흩날리는 붉은 장미.. 붉은 장미의 꽃말은 열정이다, 그래서 나의 열정적인 삶에 꽃잎을 흩날리듯이 희망의 파편도 흩날리며.."(최지혜), "사랑해- 가장 보고 싶은 말(手話)입니다(박민희). 그들의 말에는 허공에 흩어져 쉽게 산화되는 가벼움보다 마음 가장 깊은 뒷골목에서 찾아낸 삶의 깊이가 담겨있었습니다. 그 깊이의 유무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앞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손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 걸을 수 있는가 없는 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정동, 옥수역, 서울역사박물관, 동십자각 지하보도에 조성된 작품을 취재하였을 때는, 저 역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예술작품에는 일정한 의미가 있고,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와 관객 사이에 그 의미를 읽고 읽히는 치열한 탐색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 의미를 어떤 색채와 형상으로 감추어놓았을까, 우리와 같은 관객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의미를 올바로 읽어낼 수 있을지, 마치 퍼즐 맞추듯 각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정동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작품들은, 이 거리가 과거 1900년대 초기에 얼마나 훌륭한 모던 스트리트였는지 다시 한 번 환기시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그 대표적인 주제로 개화(開花)를 선택했습니다. 100년 전 근대 정동거리를 상징하는 개화(開化)를 떠올리게 하는 이중적인 장치였던 것이죠.
이런 의미를 하나하나 복호화 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유쾌했습니다. 비슷한 의미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조성된 아트쉘터(Art Shelter)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사직동 쪽으로 향하면 눈에 보이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아트쉘터라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도 함께 쓰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스스로가 하나의 오브제의 역할을 하며 이곳을 근대와 현대의 경계를 환기시키는, 이른바 "경계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지요. 단순한 버스정류장 조형물 같은 것이 그렇게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니?
그렇게 하나 둘씩 쌓여가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네 번째 취재를 위해 동대문 동화시장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위치한 밀리오레, 헬로APM, 두타와 같은 의류매장 바로 뒤에 원래 이곳에 있었던 작은 상가들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많은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동평화시장, 평화시장, 신평화시장, 동화시장의 이름이 종로 6가 근처에 모여있는데, 여기 동화시장 상가 내부를 무대로 도시갤러리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2007년 젊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죠. 바쁜 생업에 방해가 될까봐 젊은 예술인들의 노력에 비웃음을 보내는 상인들도 있었고,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열고 예술인들과 상인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물들이 동화시장 곳곳에 선 보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에 있는 그림입니다. 층 간 계단참에 그려진 이 그림은 특별한 기술과 색채를 사용한 것도 아니며, 단순히 화려한 색감으로 여기서 일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재치 있게 그려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재봉틀에서 실패가 돌아가는 소리, 발로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동화시장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경비아저씨를 크게 벽면에 그려놓기도 하는 등, 하나같이 이렇게 소담하고 정감 넘치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작품보다도 이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 작품들을 담아가려고 종종 동화시장을 찾곤 합니다. 이런 것도 예술일까, 예술은 정말 무엇일까 고민이 들기 시작한 것은 동화시장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내가 그 동안 알던 에꼴드빠리의 기괴함, 인상파의 강렬함은 예술작품의 하나의 큰 잣대였으나, 이렇게 소박하게 그러나 진실되게 담아낸 작품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열 번째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취재 때 드디어 그 실마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문, 돈의문
일제시대만 하여도 종로 강북삼성병원과 경향신문사 앞 신문로 길에 돈의문이 있었습니다. 잠시 부연 설명을 하자면 돈의문에는 사연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조선 초기에 처음 지어질 때는 다소 북쪽인 현재의 사직터널 부근에 세워졌었는데 몇 번의 폐쇄를 거쳐 세종 때 현재 위치로 옮겨온 것이죠. 돈의문은 사직터널 부근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여 새롭게 문을 지었다고 하여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렸는데, 그 때문에 강북삼성병원 앞 거리를 신문로, 새문안길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에서 기인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도읍으로 진격하자 선조가 돈의문을 통해 궁궐을 빠져 나와 의주로 향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선조가 돈의문을 나와 지금의 독립문 근처에서 궁을 돌아보니 이미 궁궐에 불이 나기 시작해 새벽하늘이 밝았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조 때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관군과 이괄이 이끄는 반란군은 돈의문 근처 낙산 어귀에서 큰 싸움을 벌이기도 했죠.
고종 때는 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을미사변 때 미우라가 이끄는 일본 낭인들은 돈의문 앞에 집결해 의기를 다지고 경복궁으로 진격합니다. 이윽고 일제강점이 시작되고 1915년 일제총독부는 돈의문을 아예 물리적으로 철거하고 근처 지명도 서대문로로 바꾸었습니다. 사실 지금 돈의문의 존재를 알려주는 표지는 철거되기 전의 사진 몇 장과 표지석이 전부입니다. 그곳을 지나는 지하철은 서대문역으로 되어있어 지명도 돈의문을 기억하지는 않게 되었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돈의문의 흔적은 거의 지워져 정확히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이들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 돈의문 터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것은 단순히 목재를 이용하여 계단참과 나무 벽면을 조성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그 어떤 예술적인 어포던스(Affordance)보다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의문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는 요즘 세대에게, 철골이 아닌 목재를 사용하여 여기에 오래 전에 돈의문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은 정말 예술적인 위트에 가까웠습니다.
돈의문 프로젝트를 바라보며 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보다는 이런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조금씩 개인적인 주관을 정해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명제로 모든 예술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위대한 예술은 그 자체로 독립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제가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때로는 예술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음을 조금은 의식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작가가 생각한 어떤 의미를 예술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뿐이지요. 따라서 어떤 형태로 전달하느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느냐, 어떤 감정을 우리가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은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그 전달 통로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훨씬 많은 다양성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어떤 기법과 색채를 통해 전달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이런 의미를 이런 방식으로도 전달할 수 있구나 라는 관대함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미술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다. 미술에는 언제나 발견해야 할 새로운 것들 것
있다. 위대한 미술 작품들은 우리가 그 작품을 대할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처럼 다함이 없고 또
예측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미술은 그 자체의 불가사의한 법칙과 모험을 가지고 있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자극적인 세계인
것이다. 미술에 관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누구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즉 이러한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암시를 포착하고 숨겨진 조화에
감응하려는 그런 참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며, 그 마음가짐은 무엇보다도 상투적인 미사여구나 진부한 경귀 같은 것에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에 관해서 속물 근성을 조성하는 설익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는 미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훨씬 좋다. 이런 위험은 대단히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내가 이 장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단순한 점들을 잘 파악한
사람들은 표현의 아름다움이나 정확한 소묘와 같은 분명한 자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작품 가운데서도 위대한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지식을 너무나 자만하기 때문에 아름답지도 정확하게 그려지지도 않은 그런 그림들만을 좋아하는
체하게 되어버린다. 그들은 너무도 분명히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주는 듯한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경우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어쩐지 불쾌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대단히 흥미 있는’ 작품이라고 부르는 속물이 되고 만다. 나는 그러한 오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또한 그렇게
무비판적인 방법으로 신뢰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쪽을 택하겠다. "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서론 中
결국 나아가면 예술은 정말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우리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지요? 예술에 대한 답을 예술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은 다소 흥미롭습니다. 서양미술사로 유명한 곰브리치는 그 실마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끝이 없는 예술의 세계를 취미로 두며 공부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 손에 잡히지 않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