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석유산업의 진화방향 모색을 위한 소고



최 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해결해야 할 현안과제는 많고도 많다. 필자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가 우리 민간 석유기업에게 닥아 오고 있다는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은 아직도 국내시장이 세계시장과 분리되어 있다는 오해 속에서 소비자를 중시하고 국제시장변화를 공부하기보다 정부와 전문성 없는 자칭소비자단체와의 적당한 타협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성장과 삶의 질 향상, 경제발전과 사회통합,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함께 가는 따뜻한자본주의체제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대여건 속에서 더욱 더 많은 해결과제들만 양산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 많고 많은 과제들 중에서도 1)하류 정유부문을 중심으로 한 현행 우리 석유산업을 원유생산을 중심으로 한 상류부문 진출을 통한 완전한 석유산업체계 구성이라는 산업구조 과제와 2)매장량 차원이나 시장개척 측면에서 석유보다 유리하다고 그간 평가되어온 천연가스의 역할이 비전통적 가스자원의 비약적 확충-개발을 통해 최근 크게 강조되고 있는 과정에서 석유산업의 전략수정이 요구되고 있는 산업통합과제, 그리고 3) 국내시장에서 가격측면 등에서의 심각하게 대처해야 하는 소비자보호 과제를 검토하여 보고자 한다.

 

1, 산업구조측면 과제

우리나라 석유산업(Oil Industry)은 사실 석유산업이 아니었다. 원유 탐사-생산을 담당하는 상류부문이 없고 정유/석유제품생산(Refinery)과 유통/소비자판매를 담당하는 하류부문만이 존재하였다. 그래서 석유산업이라는 말 대신 정유산업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세계석유시장에서 하류부문은 무한경쟁에 노출된 돈 못 버는부문이다. 막대한 독점이윤이 창출되는 상류부문의 생산품을 처분하여 순조로운 부가가치 창출활동을 돕는 역할만 하면 된다.

거대 석유기업의 경우 이윤의 대부분이 상류부문에서 창출되고 하류부문은 적자를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여건 아래 우리나라 석유산업, 정확히는 정유산업,이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지금은 석유제품 생산에서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유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리 부인하여도 에너지안보비용을 감안한 석유제품가격조정과 정부보조에 힘입은 바 크다.

독과점, 특혜금융, 직간접 보조, 시장개방 지연 등이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지난 90년대 중반 유가자유화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은 묵인되어 왔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에 우리 석유산업의 국제적 경쟁력 보유와 각종 의혹에서 탈피를 위한 최선의 방안은 전-후방부문의 완전한 결합을 통한 새로운 석유산업 구조정립일 것이다. 따라서 해외자원개발투자는 석유산업 구조개편의 첫걸음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최대 24%까지 높이는 정책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막대한 해외자원개발투자를 기반으로 한다. 자원개발투자는 장기-선행투자 비중이 큰데다 그 성공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에 어지간한 민간기업의 경우에도 단독투자에는 무리가 많다. 이에 에너지공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국내외 자본을 유치하고 인프라 건설, 유통 등 유관 업계의 공동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 결과 자주개발률 목표는 초과달성 되었으나 국가재정 부담증가, 수익성 고려미흡, 에너지안보에 대한 기여도 평가부족, 공적 서비스기능 왜곡 등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우선 국가재정에 대한 악영향을 살펴보면 2006-2010년 기간 중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자원개발 공기업 3개사 부채는 4년 새 2.6배 급증했다. 더욱이 2014년 이들 3개 에너지 공기업 부채 규모는 2006년 대비 5배나 늘어난 632000억 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정건전성 유지에 중요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약 400조원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1%이었다. 주요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체 공공기관 부채(740조원)에다 가계부채(900조원) 등까지 감안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1.5배 수준이다. 국가와 공공기관 채무만을 합해도 GDP70%에 가깝다. 더 이상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해외자원투자에 대한 수익성은 국제유가 수준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외국기업인수, 광구확보 등의 수익률은 주로 투자시점과 평가시점 간의 유가변화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확한 수익률은 생산종료시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광물자원 가격 역시 유가에 연동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무작정 올라가지만은 않는다. 지금 유가는 이론 상 적정 유가인 80달러 선을 훨씬 넘는다.

2030150달러 예측도 일시적인 상한선 전망일 따름이다. 150달러 수준이면 오일세일, 심해저 원유, 비전통 가스자원, 석탄액화 등 다양한 석유대체재가 석유시장에서 경쟁하면서 기술혁신효과에 의한 가격하향안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이자비용과 투자의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불변가격 기준 80달러 이상인 시점의 투자는 모두 경제성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 이에 정부가 제시한 자주개발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기업들이 돈을 빌려서 해외자원 확보를 무작정 계속할 일만은 아니다.

경제성 없는 공공기관투자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주개발 결과의 효용성이다. 투자의 생산품이 자원위기 시 우리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관행적으로 국내 수요 대비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개발하여 확보한 자원비율이라는 광의(廣意)의 자주개발률 개념을 채택한 결과이다. 투자 후 확보한 자원 중에는 그 품질과 수송거리, 그리고 자원보유국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 시장에서 활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중()질유 분해 위주로 설계된 우리나라 정유공장에서는 자주개발된 경()질 원유는 쓸모가 없다.

원거리 수송인 경우 대략 몇 달 안에 끝나는 가격파동 시 수송비를 감안하면 대안이 아니다. 물론 자원보유국이 자원위기 시 반출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이런 자원은 위기대응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이에 해외에서 개발하여 국내에 도입한 자원만을 기준으로 하는 ()자주개발률 개념이 활용되어야 한다, 협의의 개념을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자주개발률은 많은 경우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석유의 경우 아마 협의의 자주개발률은 제로(Zero)가 아닌지? 우리 민간 석유기업은 이러한 모순에서 자유로운가? 해외석유개발투자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

 

2, 산업통합 과제

국제에너지기구(IEA/OECD)는 금년 들어 이례적으로 가스 황금시대”(Golden Age of Gas)라는 특별보고서를 6월 초 발표하였다. 여기서 IEA2010 - 2035년 기간 중 세계가스소비는 50% 정도 증가하여 전체 에너지소비의 25%를 점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세계에너지소비가 2035년까지 년평균 1.2% 증가하지만 천연가스의 경우는 그 2배에 가까운 년 2% 수준 증가하여 가스 황금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가스소비증가는 당연히 천연가스 생산증가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35년까지 현재 러시아 생산량의 3배나 되는 1.8tcm(입방미터)규모의 가스 증산이 가능하여 총 소비량은 5.1tcm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천연가스는 2030년쯤에는 세계에너지소비구조 상 석탄을 초월하여 석유에 뒤이은 제2의 주종에너지원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 같은 생산증대의 대부분(60%)은 기존 천연가스자원이지만 쉐일(Shale)가스, 석탄층가스 등 새롭게 발견된 전통적- 천연가스들도 2035년까지 총공급의 40%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천연가스의 역할 증대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스자원의 발견에 의한 것이다.

현재 확인가능한 가스매장량의 가채 년 수는 현 수준 소비량을 기준으로 할 때 75년 이지만 궁극적 가채량은 향후 250년 정도 소비량에 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의 경우 가스소비 증가도 활발하지만 자국 내 가스자원개발과 생산도 활발할 것이다, IEA2035년 중국이 전통적- 천연가스자원 개발을 통해 러시아와 미국에 이은 세계 3위 가스 생산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국내가스자원 고갈로 수입에 의존하던 미국 역시 천연가스자원 개발로 러시아에 비견되는 가스대국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세계가스시장 개편이 활발할 것 같다. 물론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한 원자력에너지 역할증대의 한계, 신재생에너지 기술혁신의 지연 등도 주종 화석연료중 가장 청정한 천연가스 역할증대에 일조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오일 메이저나 산유국 국영석유회사들은 오일-가스사업 융합 내지 통합체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칸막이식 에너지원별 과점체재 유지를 위해 이러한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3, 석유제품가격 결정과 소비자보호 과제

민간 정유사들의 자발적” 100원 인하종료 이후 휘발유 값은 또 다시 사상 최고수준 언저리에 있다. 물가관리에 급한 정부는 민간 기업들에게 가격인하 압박을 하였지만 헛수고인 것 같다. 사실 기름 값 10% 인상 시 기업생산비 0,25% 상승, 가계구매력 0.8% 하락을 유발한다. 더욱이 갈수록 그 파급효과가 커지고 있어 또 다른 문제이다. 이에 일견 무리할 것 같은 각종 정책대안들이 연거푸 나오고 있다. 예컨대 석유공사가 해외제품을 직접수입하고 공공기관들이 운영을 담당하는 대안(代案) 주유소를 설립하여 리터 당 100원 내외 기름 값을 내리겠다고 한다. 지난 15년 이상 시행 중인 유가 자유화조치를 스스로 뒤집는 일이다.

시장진입 인프라 구성에 최소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도움이 안 되는 줄 다 알면서도 그런다. 당연히 관련업계는 무리한 구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우리 석유제품 수출능력을 감안하면 석유공사가 국내산보다 값싼 해외제품 수입가능성도 크지 않다. 사실 세금 50%, 수입원유대, 정제이윤 등 정유사 출고가 45%,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 5% 정도인 현행 유가구조에서 100원 수준의 인하는 주유소 뿐 아니라 정유사의 이윤의 일부포기를 의미한다.

이에 업계는 정부정책의 마지막 교두보인 유류세 인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간 정부의 민간압박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기름 값의 절반쯤인 유류세(작년 184000억 원)의 경직성 때문이다. 유류세만 10%만 내리면 간단히 휘발유값을 100원 인하할 수 있다. 정부가 우려하는 세수감소는 무리한 건설투자 자제와 고유가로 더 걷힐 유류세 1조원 등으로 충당 가능하단다. 과연 유류세 인하로 유가인하가 실현될까? 물론 정치 이슈화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기능 회복이라는 더 큰 정책과제를 동반할 것이다. 정부주도 석유산업 구조개편 불가피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석유산업은 아직 에너지안보 중시정책에 의거 수직-계열화된 암묵적과점체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나 업계 모두 암묵적과점체재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과거와는 달리 과점체제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민간기업도 일정 조건 아래서는 수용할 것이다.

특히 상-하류부문을 두루 갖춘 국제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기업구조개편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민간의 자체투자로는 단기간 내에는 힘들다. 따라서 지금껏 상류부문 해외투자와 비축업무만을 담당해온 석유공사를 앞세우고 관련 기관들의 참여를 통해 메이저급 공공석유기업 설립이 검토될 것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100억불 이상 투자하여 일산(日産) 20만배럴, 10년 이내 60만배럴 수준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전량 해외시장에 매각하여 우리 에너지안보에 직접 기여가 적었다. 국민의 돈으로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비난도 들었다. 이에 직접 생산한 원유를 국내로 가져와 민간보다 값싼 석유제품을 공급한다는 명분을 강조할 것이다. 필요시 주유소를 새로 짖기보다 기존 배급망을 활용하고 저소득층, 소규모 자영업자 등에게는 더욱 값싸게 공급하는 책무를 기꺼이 담당한다는 점도 강조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 민간석유기업의 전략은 어떠한가? 지금의 국제경쟁력을 유자할 수 있는가? 여기에다 따뜻한 상생 자본주의라는 한국자본주의 4.0의 실천과정에서 기존 석유산업을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자본주의3.0 체재의 전형이라고 비난할 경우 대처방안은 있는가? 1차 에너지 해외의존도 97%인 우리나라에서 석유제품자급도 100%라는 작은 자부심이 이제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