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 뮤지컬 보러 가실래요?

한성준 | 대한석유협회 사원

세상에는 참 많은 취미 생활이 있습니다. 드라마 보기, 나는 가수다 등의 쇼프로 보기도 엄연한 취미 생활이지요, 직장인으로서는 시원한 에어콘 바람 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가끔은 DMB의 좁은 화면과 TV라는 검정색 상자에 자신의 꿈과 신비, 모험의 상상력이 갇혀 버렸다는 생각, 안 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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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처음으로 TV의 답답한 상자에서 벗어나게끔 이끌었던 뮤지컬이 바로 조승우 씨가 주연을 했던 지킬앤하이드입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약간의 부담을 -비용에 대한 부담과 복장에 대한 부담-지고 지킬 박사와 미스터 하이드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알려준 사실, 뮤지컬은 태생적으로 유럽 평민들의 무대이기 때문에 별도의 복장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하나의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천둥 같은 노랫소리와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감미로운 꽃향기 같은 멜로디는 값진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되어 저의 가슴을 메워 주었습니다.

7년이 지나 다시 지킬앤하이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샤롯데씨어터로 달려갔습니다. 한번 더 그 때의 감동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잠시 뮤지컬의 장점 몇 가지를 살펴 볼까요?

1.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는 주인공
- 당장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가서 주인공과 춤추고 싶고, 그와 함께 노래 부르고 싶어집니다. 나의 영웅들과 같은 시간 속에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두 시간이 되는 거지요. 내가 열심히 들으면 들을수록 주인공은 더욱 작품에 몰입합니다. 중간중간의 탄성과 놀라움의 표시로 작품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2. 실수에 대한 조마조마함
- 나의 영웅들이 실수라도 한다면? 그 조마조마함은 곧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줍니다. 마치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는양, 다음에 어떤 대사를 하고 노래는 어떻게 부르고, 어떤 손짓을 할지 고민하며 뮤지컬에 몰입하게 된답니다.

3. 순간순간 무대를 지배하는 나의 영웅들
- 뮤지컬의 주인공은 단순히 주요 역을 맡은 1~2명의 남녀가 아니랍니다. 매번 지나가는 순간순간 주인공은 바뀌고 한명 한명이 한 장면을, 1초를 지배합니다. 또한 영화처럼 각종 소품이나 컴퓨터 그래픽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화면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기에 주변의 인물(언터스터디 혹은 스탠바이라고 지칭하지요)의 손짓 발짓 하나가 전체 흐름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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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킬앤하이드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죠.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과 함께 널리 알려진 스토리를 뮤지컬로 만들었기에 큰 부담없이 내용을 즐기면서도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또한 1인 2역의 모습을 보면서 점잖은 지킬 박사와 그에 내재된 악마의 연기, 그 둘 사이의 갈등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답니다. 선과 악을 분리해서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지킬 박사의 신념이 악함을 낳습니다. 지킬은 하이드의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어느 순간 하이드가 지킬을 억누르게 되고 결국 지킬은….

“닥터 지킬, 이런 제길!!”
지킬 박사는 약혼식을 치른 후 유흥가에서 루시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제해야 된다는 마음에 결국 주사바늘을 자신의 몸에 꽂습니다.

날 묶어왔던 마법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지금 이 순간이 나만의 길
새로운 도전을 향한 지킬 박사의 집념, 그리고 지킬 박사안에 내재되어 있는 미스터 하이드의 외침. 지금 이 순간으로 기점이 나뉩니다. 선(善)과 사랑을 향한 순수한 욕구와, 분노⋅폭력⋅혼돈⋅파괴가 함께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

한편 지킬 박사의 약혼녀는 그와 함께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여성입니다. 약혼식에 늦은 지킬 박사를 이해하며 그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해하는 여성입니다.

우리의 여정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 약속할 필요 없어요, 단지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애절한 엠마는 자신의 지킬 박사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는지, 잘못된 실험으로 흉악한 살인범으로 자신의 약혼자가 변해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를 기다립니다.

지킬 박사의 또 다른 사랑은 루시. 미스터 하이드에게 받은 상처를 지킬 박사에게서 치료 받으면서 그와의 사랑에 빠진 거리의 여자 루시. 폭력과 파괴의 하이드는 루시를 헤치려하고 그것을 알아챈 지킬은 루시에게 도망갈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제 지킬 속의 하이드가 아닌, 지킬을 억누르는 하이드입니다! 지킬은 하이드로부터 루시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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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힘들던 기억이 떠밀려와, 날고 싶지만 두려워. 하지만 그대가 용기를 준다면 날 수 있어요. 꿈이 부서진다하여도 용기를 준다면 날 수 있어.
루시는 자신의 꿈이 부서져 버릴지 알았을까요. 자신의 폭력으로 인해 루시의 꿈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킬은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 명의 남녀가 이끄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듯 뮤지컬을 이끄는 것은 그들 몇 명이 아니랍니다. 한 장면 한 장면에 나오는 모두가 hero 이자 heroine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진행한 이야기가 끝나고 등장 인물들이 모두 함께 인사를 할 때(커튼콜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흡사하죠.)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몰입시키고 스토리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영웅들에게 일어서서 환호의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TV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영화가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지실 때, 꼭 뮤지컬을 보러 가세요. 눈 수북이 쌓인 평원에 비치는 햇살같은 애절함, 갖은 고민과 고뇌에도 극복될 수 없는 주인공들의 번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하는 절망. 지금 만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