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2015년 이후에 논의해야

염승한 | 전국경제인연합회 미래산업팀 조사역

정부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제한하고, 실제 배출량의 잉여분과 부족분을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소위 ‘총량제한배출권거래제’를 2015년에 도입하기 위하여 관련 법률안을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하였다. 산업계는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은 관련 인프라 구축이 최소한으로 완료되는 2015년 이후 국제협상 및 주요 경쟁국의 도입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 배출권거래제는 오염물질에 따른 외부효과를 내부화하고, 기업의 감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오염물질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하여 이러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사용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 비용으로서 원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주력 제조업이 국제경쟁에 크게 노출되어 중국 등 신흥개도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에너지가격 역시 원가경쟁력 차원에서 절약할 수밖에 없다.

해외 동향을 보더라도 배출권거래제의 장점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그렇게 경제적 효용이 높은 제도라면 왜 EU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지 않는가. 미국은 지난 해 말 중간선거에서 온실가스 감축규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의 공화당이 승리함에 따라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도 지난 해 말, 각료회의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연기하고, 낮은 수준의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호주 역시 산업 부담을 이유로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 상황이다. 제조업에 있어서 우리와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중국은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대한 논의만 시작하고 있는 정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배출권거래제도가 이론적으로 제시되는 것과 달리 실제 시행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무엇보다 한 기업(사업장)의 온실가스 할당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이 마련되기 어렵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기업의 감축노력 여부보다 생산활동에 더욱 큰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을 예측하여 배출권할당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정할당량에 대한 정부와 기업 간 의견대립이 불가피하다. EU의 경우에도 할당량 배분과 관련하여 EU위원회와 각국 정부, 각국 정부와 기업간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던 바 있다.

예상치 못한 경기변동 등 외부요인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도 단점으로 작용한다. 경기가 활황인 경우에는 생산량 증가에 따른 배출권의 전체적인 부족이, 경기 불황 시에는 잉여배출권이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가격형성이 불안정할 가능성이 크다. EU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제조업 생산이 감소하면서 7개월간 배출권 가격이 34유로에서 9유로대로 하락한 바 있었다.

또한,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경쟁을 왜곡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배출권 할당 이후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기업은 생산량의 증가를 위해 배출권을 추가로 구입을 해야 하는 반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퇴출 기업은 생산감소분만큼의 배출권을 판매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배출권 시장 자체가 형성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배출권거래제 전체 참여자가 1만개가 넘는 EU와 달리 우리나라는 참여자가 약 500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참여 사업장 500개 가운데 상위권 20개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배출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핵심 다량 배출 사업장의 움직임에 따라 시장이 좌우될 우려가 훨씬 크다. 특히 국제경기에 민감한 우리 경제구조 상 대부분의 대량배출 사업장이 향후 경기변동에 대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배출권 확보를 위해 구입에만 나설 경우, 시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배출권거래제가 가진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미 국내 에너지관리공단 등 주요 연구기관에서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 발생이 연간 수조원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부담은 철강, 석유화학 등 대표적인 중간재 산업으로 집중될 것으로 전망되어, 전후방 연계산업 및 국민경제 파급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대하여 지난 2009년 녹색성장기본법 제정 시부터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녹색성장기본법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대하여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상 동향’을 감안하여 추진토록 한 것이나,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될’ 업종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하도록 한 것은 그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상은 2012년 이후의 국제적인 감축의무부담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의견차이로 인하여 큰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인류 공동의 문제인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문제이며, 우리만의 노력으로 될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한 나라이다. 경제적인 부담이 큰 제도의 도입에 재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