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우리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약속한 것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우리 삶의 질을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시켜 주었던 화석 연료가 이제는 우리 생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는 일에 우리가 앞장을 서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우리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저탄소 녹색성장이 만만한 목표는 아니다. 단순히 목소리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고, 상당한 고통을 감당하더라고 반드시 목표에 다가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름값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획기적으로 개선을 해야 한다.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기름값 논란

사실 기름값 논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국제 금융 대란으로 원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았던 2008년에도 극심한 논란이 있었다. 더 길게는 1994년 정유사가 민영화된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쟁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유사가 기름값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얻고 있다는 의혹이 ‘기름값이 비싸다’는 사회 부정적인 정서와 맞물리면서 증폭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통계 자료와 즉흥적인 시세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원가’ 산정이 불가능한 석유 제품의 특성도 무시된다. 그러나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의 논란을 통해 복잡한 유류세가 기름값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과다하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모니터링도 시작됐다.

기름값이 얼마나 비싸고, 유류세가 정말 과도한 것인지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다. 여유가 있는 소비자에게 비싼 기름값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기름값의 적정성에 대한 의견은 개의 형편과 입장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유류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류세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세수(稅收) 확보나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에서는 유류세가 높아야 하지만, 반대로 소비자의 편익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낮은 것이 더 바람직하다.

결국 단순히 기름값이 ‘비싸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감정적인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최근 정부와 정유사가 서로 양보를 요구하면서 정면으로 충돌했던 경우도 그랬다. 보장된 세수를 양보할 수 없다는 정부와 최소한의 영업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정유사의 입장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논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류세는 에너지 정책의 핵심

휘발유, 경유, LPG, LNG 등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비롯한 세금은 정부가 결정하는 전기요금과 함께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다. 특히 자동차와 난방 연료에 부과되는 세금은 우리의 에너지 소비 패턴과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다. 세금을 올리면 소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세금을 올릴 수는 없다. 서민들에 대한 부담도 고려해야 하고, 산업 경쟁력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높은 세금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적정하게 부과되는 세금은 우리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효율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에너지 세제의 핵심은 1994년에 한시적인 ‘교통세법’으로 시작된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를 포함한 유류세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른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 그리고 수입 원유에 부과되는 관세다. 특히 지경부가 부과하고 징수하는 부과금은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세제는 모두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목적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비롯한 유류세는 연간 21조원을 넘어서 국세의 15~2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 작년에는 정부가 유류세를 예상보다 3조원이나 더 걷었다는 주장도 있다.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도 연간 3조원이 넘는 것는다.

정체성을 상실해버린 에너지 세제

엄청난 규모의 유류세와 부과금이 본래의 입법 취지에 맞도록 활용되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할 문제다. 특히 석유 제품의 ‘가격 안정’을 핑계로 부과되는 부과금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이런 에너지 세제가 우리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마땅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에너지 세제는 여러 면에서 지나치게 과도하고 불합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에너지 세제가 단순히 에너지 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정부의 세수 확보를 위한 조세 정책, 서민 지원을 위한 복지 정책,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산업 정책, 환경 보존을 위한 환경 정책 등의 다양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에너지 정책은 없고, 조세, 복지, 산업, 환경이 마구 뒤섞인 에너지 조세 정책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유사 석유 제품’의 존재가 바로 우리의 유류세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엄청난 규모의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는 유사 석유의 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용제류(溶劑類)의 석유 제품이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난방용 등유도 자유롭게 판매하고 있다. 난방용 등유는 곧바로 유사 경유로 남용될 수 있는 제품이다.

결국 유류세가 지나치게 과도해지면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유사 석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은밀하게 거래되는 유사 석유에 의한 탈루 세액이 무려 5조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화재와 폭발 위험이 큰 유사 석유의 유통에 따른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까지 고려하면 유류세를 과도하게 징수할 명분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가 우리와 달리 유사 석유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 선진국과의 유류세 비교를 앞세우는 사이에 우리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이면서 희생자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택시, 화물 운송업자, 농민, 어민을 위한 유류세 환급금과 보조금도 우리의 에너지 세제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뜻이다. 징수한 세금을 되돌려주기 위해 낭비하는 예산의 규모도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급금과 보조금 지급에 따른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더욱이 석유제품에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소비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전력 소비의 23%가 난방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시킬 수 없다. 혹한으로 시달리던 지난 겨울에 경험했던 전력 대란의 위기는 결코 가볍게 볼 일도 아니고,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다.

불합리한 에너지 소비

수송용으로 사용되는 휘발유, 경유, LPG의 상대적 소비도 불합리한 에너지 세제에서 비롯되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정유사가 생산하는 휘발유와 경유의 60%를 수출하는 석유제품 수출 강국이다. 휘발유와 경유를 비롯한 석유제품이 우리 수출품목의 1위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다. 심지어 일본과 중국도 우리의 석유 제품 수출 시장이다. 석유화학제품까지 고려하면 우리에게 정유산업은 단연코 수출 품목 1위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국가 기간 산업이다.

그런 우리가 정유사의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LPG 소비량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가 생산한 휘발유와 경유는 힘들여 수출을 하고, 멀리 중동 지역에서 폭발 위험이 높은 LPG를 엄청나게 수입해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면으로도 보더라도 상식을 벗어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를 휘발유에 부과되는 과도한 유류세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사용하던 LPG가 이제는 우리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극도로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

급속한 경유 자동차 엔진의 기술 혁신으로 국제적으로는 휘발유보다 더 높은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경유가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싸구려 천덕꾸러기로 취급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유럽에서는 경유차가 미래형 ‘클린 자동차’로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류세에 의해 왜곡된 유종간 가격 불균형은 산업 정책을 최우선으로 했던 과거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골칫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녹색 경제를 위한 에너지 세제 개편

우리가 추구하는 녹색 경제가 오로지 신재생 에너지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재생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온실 가스 배출에 의한 환경과 기후 문제 해결이 핵심 과제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화석 연료와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의 정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투자와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신재생 에너지에만 올인할 수도 없다.

가장 현실적인 녹색 경제 대책은 에너지 소비 절약과 효율화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에너지 소비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 높은 에너지 세제를 감당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사 휘발유가 판을 치는 현실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환급금과 보조금 제도는 대폭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단순히 관리를 강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유종간 소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특히 전력 수급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를 합리화하고 효율화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수 확보, 서민 지원, 산업 경쟁력 강화, 환경 보존의 문제는 에너지 정책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유류세와 부담금으로 정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