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_아시아경제 기자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국제유가. 어떻게든 기름 값을 잡아보겠다는 정부. 뛰는 휘발유·경유 가격에 시름하는 서민.
‘기름’으로 먹고 사는 정유사가 ‘기름’의 덫에 빠져있다. 나날이 오르는 유가를 고스란히 반영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마진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져있다. 그저 정부의 눈치만 살피며, 시장 상황을 조금씩 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중동 지역으로 확산돼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유사의 목만 옥죄고 있다. 이런 정부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유류세를 내리고, 가격을 잡으려 하는가. 과연 유류세 인하가 효율적인 방향인지, 유류세 인하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되짚어 보자면 유류세 인하하는 방안은 정부에도, 국민들에게도, 정유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알토란같은 세원을 잃게 되고, 정유사들은 수백억원 이상의 매출 감소로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렇다고 서민들에게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도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유류세는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OECD 3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고급휘발유에 적용되는 세금은 리터(ℓ)당 967원으로 18위에 해당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국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세금이 많고, 그리스의 경우 우리나라 보다 1.5배 많은 ℓ당 1490원의 세금이 붙는다.
경유에 붙는 세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싸다. 2월 셋째주를 기준으로 경유에 붙는 세금은 ℓ당 668원으로 OECD 가입국 중에 20위다. 경쟁국들과 비교해 결코 우리나라의 세금 수준이 도를 넘은 것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한해 동안 유류세로 거둔 세금은 20조원 안팎이다. 지난해 모두 178조원의 세금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11.2%를 차지하는 규모다. 조세조항이 없는 말 그대로 ‘알토란’ 같은 세원이다.
만약 정부가 유류세를 10%를 내린다고 가정하면 단순히 계산해도 2조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지방의 한 광역시의 한해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 날아가는 셈이다. 정부가 덕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지갑이 채워질까? 정부가 입는 타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얻는 실익도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보통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로 리터(ℓ)당 대략 900원 수준이다. 세금을 10% 내린다고 가정하면 ℓ당 90원정도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보통 가정에서 1회 평균 5만원어치 기름을 넣는다고 가정하면 1회 주유시(3월1일 기준 보통회발유 ℓ당 1877원 기준) 2400원 정도가 남는다. 그렇지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상쇄를 감안하면 소비자가 체감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주유소의 유통마진 등을 따지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 2월 정유사들이 각 사별로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감안하고 난방유인 등유 가격을 각 사별로 ℓ당 50~60원씩 인하했다. 그러나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내린 이후 주유소 판매 등유가격은 나흘 동안 ℓ당 1.75원 내린 이후 다시 반등했고, 7일만에 가격인하 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뛰어 올랐다. 가격 하락이 실질적으로 서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정유사도 혜택 못 보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주장대로 가격을 내리게 되면 2~3%에 불과한 영업이익률을 갉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마저도 국내 판매보다는 해외 수출을 통한 이익이 더 큰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내수시장에서는 속된말로 밑지고 팔아야 한다는 말이다.
서민, 정부, 정유사만이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전 지구적 가치와도 맞지않다. 모두가 에너지 절약을 외치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등 에너지 절약을 외치는 상황에서 시장의 수급에 따른 가격 조정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기름값을 내리도록 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기름 사용을 조장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또 인위적인 가격 조정이 시장을 왜곡하게 될 수도 있다.
또 서민경제를 챙기겠다는 정부의 지향점과도 맞지 않는다. 유류세는 '간접세'인 탓에 많이 쓰는 대기업이나 조금 쓰는 서민이나 같은 세금을 낸다. 5만원을 사용해 2400원을 아끼는 것과 5억원 어치를 써 2400만원을 남기는 것을 따지고 보면 계산은 쉽다. 곧 유류세 인하로 실질적인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서민이기보다는 기업들인 셈이다.
종합적으로 따지고 보면 기름값 인하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하지만 득실을 떠나서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직무유기나 다름없기 때문. 유가 상승의 실질적인 타격을 입는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찾고, 효과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과제다. 세원 감소를 최소화시키고,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우처 제도다. 일종의 기름값 쿠폰으로 생계형 영업용 자동차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에게 지원해 기름값 인상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다. 영업용 차량이 아니더라도 난방유 부족으로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겨울을 나는 독거노인이나 저소득 가정에 쿠폰을 지급해 효과를 얻도록 하는 제도다.
선택적인 지원으로 예산 감소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효과는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시장 가격을 유지하도록 하면서 일반 가정에서는 유류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가 된다면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쿠폰을 지급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규정 등을 참고하고, 세액 등을 확인한다면 크게 어려운 방안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에너지 수급구조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유업계가 주장하는 클린디젤하이브리드버스가 대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생산하는 디젤엔진은 유럽의 환경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과거 서울의 공기를 뿌옇게 만들던 매연과 환경오염물질을 더 이상 배출하지 않고도 높은 연비를 실현해 낼 수 있다는 것.
특히 석유협회가 준비해 지난해 할 공개한 클린디젤하이브리드 버스의 경우 에너지절감과 환경오염 예방 등 모든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지원하고 있는 천연가스(LNG)버스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당장은 LNG버스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지원비용가 인프라 상황을 감안하면 LNG버스와 가격부담이 허물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정유제품과 LNG의 수급 상황을 보면 오히려 디젤 쪽으로 추가 기울어진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은 1억3076만 배럴의 경유를 해외 시장에 내다 팔았다. 지난 1월에만 1152배럴을 수출하는 등 월평균 1000배럴 이상을 꾸준히 수출해온 것이다. 반면 LNG는 울산 연안에서 생산되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량 수입해서 사용한다. 경유의 비중을 늘린다면 자연스레 LNG의 추가 수입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금의 기름값 논란은 몇 개월 아니, 몇 주만 지나도 다시 잠잠해 질 가능성도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줄어들면 글로벌 원유수급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것. 그러나 2008년에 그랬듯 문제는 다시 반복된다.
유가 급등이 발생할 때 마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해마다 반복된다. 원유 수입국을 다양화하고, 에너지를 절감한다는 것. 똑같다. 반복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논쟁만 지속될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부가 가야할 방향은 분명하다. 너무도 뻔한 답들이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명확한 해답이다. 정유업계도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동반성장’의 측면 또 착한기업, 기업 시민이라는 관점이 대두되면서 기업의 윤리성, 사회성은 더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고, 대기업들인 정유사들이 비난이나 책임을 100%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