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백_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장
초고유가 시대
12월 들어 국제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90불에 바짝 다가서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그 동안 경기회복 속도, 유럽발 재정위기 등 여러 가지 경제변수에 영향을 받으며 배럴당 70~80불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에는 아일랜드의 재정위기로 인해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듯하였으나, 아일랜드에 구제금융 지원 결정, 전 세계적인 주식시장 활황 등 세계 경기회복 추세와 미국의 2차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e) 같은 재정 확장정책에 따른 지속적인 유가상승 압력으로 배럴당 90불대로 상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는 2008년 두바이유가 배럴당 140불대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였으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로 그 해 말에는 배럴당 36불까지 하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국제유가 움직임을 보면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준수율을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는 점, 금년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부장관이 배럴당 70~80불의 가격 수준을 완벽에 가까운 것(as close to perfect as possible)이라 언급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제는 배럴당 70~80불의 국제유가는 우리나라가 경제 운용전략을 수립할 때 주어진 변수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 해 전체 에너지소비의 96% 이상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석유의존도가 여전히 42%가 넘는 우리나라와 같은 에너지다소비구조 하에서 실제로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2% 정도 하락한다는 연구결과를 감안할 때, 최근의 초고유가 상황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석유산업에 대한 시각과 석유산업의 위상
요즘처럼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유류가격도 상승하면, 국내 유가와 관련된 석유산업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상승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는 정유사가 국내 가격을 조금만 하락시키고, 국제 가격이 상승하면 즉각 국내가격을 인상하여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간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해소하기 위해 석유시장 감시단 활동과 사회공헌 노력을 전개해 왔지만, 아직도 언론의 유가 관련 기사와 국정감사 등에서 비판적인 언급이 줄지 않는 것은 국내에서 정유사와 주유소 등 석유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부정적임을 반증하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단한 통계 숫자로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위상과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자. 먼저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으로 하루에 290만 배럴의 석유를 해외로부터 수입하는데 이는 세계 5위 수준이고, 우리가 소비하는 석유량은 하루에 230만 배럴로서 세계 9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하루에 정제할 수 있는 석유량은 하루에 290만 배럴, 특히 고부가가치 영역인 고도화 설비율은 18.7%에 이르며, 비상시에 대비해 정부와 민간을 합해 총 174백만 배럴의 석유를 국내에 비축하고 있는 데, 이와 같은 정제 능력 및 비축량은 모두 세계 6위 수준으로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국제적인 위상과 경쟁력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우리의 독자적인 힘으로 달성한 해외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이 2007년 4.1%에서 2009년 8.1%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 점도 석유산업에 있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살펴보자. 먼저 석유와 석유화학 산업의 GDP는 2009년 기준으로 41조원으로 집계되었는 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GDP 944조원의 4.4%에 해당한다. 또한, 2009년 정유업계 전체 매출액은 90조 2천억원이었는데, POSCO 매출액(26.9조원) 대비 3.4배, 현대자동차 매출액(31.8조원)대비 3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세수 측면에서 살펴보면 2009년 총 국세 수입이 164조원이었는데, 그 중 13.3%인 21.8조원이 유류세를 통해 조달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마지막으로 수출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석유제품의 50% 이상은 해외로 수출되며, 매년 수출입 통계에서 반도체, 조선 등과 함께 수출 상위 5대 품목에 포함될 정도로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석유산업의 환경변화와 도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국내 석유산업이 석유의존적인 환경 속에서 국내에서는 경제성장의 주축이 되고 국제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앞으로도 그런 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향후 석유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그다지 녹녹치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고 나아가 미래에 석유산업 환경을 주도할만한 변화의 가장 큰 흐름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온실가스 감축일 것이다. 포스트 교토 체제를 결정짓기 위한 기후변화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며, 온실가스 감축은 세계 각 국 정상들의 최우선 아젠다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그 추세에 동참하여 2009년 말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식화한 바 있으며, 배출권 거래제, 에너지감축목표 할당 등 관련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친환경 에너지 보급확대 추세이다. 세계 각 국은 에너지 위기 대응에 관심을 보이며, 신재생 에너지공급 의무제나 세제 지원 등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 또한 석탄이나 석유소비에서 도시가스 및 전기와 같은 편리한 에너지로 소비 행태를 전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 추세인데, 미국 오바마 정부는 2015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 보급하겠다는 내용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고, 우리나라도 금년 9월 ‘전기자동차 개발 및 보급계획’을 발표하여, 2020년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 전기자동차를 20% 보급하겠다고 공식화하였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큰 환경 변화는 앞으로 석유수요를 위축시킴으로써 석유산업에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전 세계적인 석유수요 정체와 인도, 베트남, 중국 등 신규 정제공장 증설에 따른 공급증가로 정제마진이 계속 악화되는 것도 또 하나의 도전요인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 정제 가동률은 2008년 84%에서 2009년 82%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정제시설 가동을 중단하거나 폐쇄한 사례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석유사업 미래 발전전략
영국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한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일본 도레이社가 87~98년 섬유산업 호황기에 인원을 감축하고, 설비증설을 자제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93년 불황기에는 오히려 설비투자를 증가하여 세계 1위의 자리를 탈환한 사례는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성공적으로 극복한 좋은 사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소한 2030년까지는 석유가 전 세계 1차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30%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석유산업은 ‘맑은 날에 비오는 날을 대비’하듯이 지금부터 20년, 30년 후의 미래를 헤쳐 나갈 전략을 현 시점에서 구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한 석유산업의 미래 발전방향에 대해 크게 3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앞서 언급한 큰 석유산업 환경 변화를 단순히 위기로만 인식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요인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 전기자동차 보급 등은 석유수요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나, 오히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청정개발사업(CDM)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고, 감축실적을 거래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나 전기자동차 보급에 대비하여 충전시설 관련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개발, 인프라 구축 사업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요인으로 바꾸려는 공세적인 의지와 혜안일 것이다.
두 번째로, 국내 석유산업은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석유수요 정체와 아시아 신흥국 중심으로 석유공급 능력이 증대되면서 정제마진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 말은 곧 원유를 정제하여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로는 더 이상 큰 이익을 얻기가 어려운 시장구조라는 의미일 것이다. 정제의 개념을 보다 상류와 하류로 개념을 확장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석유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원유 수입이 아닌 원유의 원천적인 확보로 단순 정제보다는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석유의 경계를 넘어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 2차 전지,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등 에너지 관련 신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다양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09년 기준으로 정유 부문의 매출액은 71조원으로서 비정유 부문 19.3조원에 비해 3.5배나 컸으나, 당기순이익은 713억원으로서 비정유부문 1.7조원 대비 4% 수준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석유제품이 아닌 정유시설이나 운영 노하우 자체 등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것도 하나의 사업 다각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석유산업에 대한 대외 인식과 이미지 개선이다. 석유제품이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석유 시장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더 이상 국민과 함께하는 산업으로 발전해나가기 어렵다. 석유산업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담합’, ‘폭리’라는 단어를 지우고 공정한 시장, 신뢰받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석유업계 차원의 노력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CSR)의 외연을 확대하고, 석유산업이 국민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효자기업’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때, 석유산업의 굳건한 발전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유사를 중심으로 주유소 및 판매소까지 모두 합심하여 미래를 준비할 때, 소비자는 물론 정부와 언론도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