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석_에너지경제연구원·선임연구위원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석유산업은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였다. 국내 석유기업의 원유정제능력은 1964년 SK에너지(당시 유공)의 하루 3.5만 배럴을 시작으로 꾸준히 늘어나 2010년 현재는 하루 285.5만 배럴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정제능력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에 이어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석유산업이 성장, 발전함에 따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석유산업의 비중도 크게 확대되어 왔다. 지난해 석유산업의 부가가치는 6.8조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7%이다. 원유 및 석유제품은 전체 수입금액의 19.6%를 차지하며, 각각 1위와 4위의 수입 품목에 올라 있다. 또한 석유제품은 2008년에는 전체 수출액의 8.7%로 최대 수출 품목이었고, 2009년에는 전체 수출액의 6.3%로 자동차에 이어 6위의 수출 품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마이클 포터(M. Porter)는 한 국가 특정 산업의 경쟁력은 생산성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요소조건, 수요조건, 관련 및 지원산업, 기업구조와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상의 네 가지 조건에 더하여 포오터는 조정촉매자로서 정부의 역할도 강조하였다.
포오터의 경쟁력 결정요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나라 석유산업 발전의 주요한 동인은 국내수요의 급속한 확대, 대기업 그룹에 소속되어 육성된 석유기업의 구조와 전략, 그리고 정부의 지원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내수 규모의 급속한 확대는 우리나라 석유산업에 가장 중요한 경쟁력 원천을 제공하였다. 국내 석유수요는 과거의 고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단히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으로 1969∼79년 기간 중 석유소비 증가율이 연평균 13.8%에 이르렀다.
국내 석유수요는 2차 석유위기의 영향으로 1980년대 초반에 침체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외환위기 이전 10년 동안인 1987∼97년 기간 중의 석유소비 증가율은 다시 연평균 14.2%라는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자동차 대수의 급속한 증가와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연료 고급화 추세로 수송 및 가정‧상업부문의 소비 급증에 기인한 것이다.
국내 석유소비는 1998년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마이너스 15.6%를 기록한 후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1998∼2009년 기간 동안의 연평균 증가율은 1.2%에 그치고 있다. 이는 가정‧상업부문의 석유수요가 가스와 전력으로 대체되고 수송부문의 석유수요도 성숙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세계 10대 석유소비국에 진입하였으며, 국내 석유소비는 2009년 기준으로 세계 석유수요의 2.8%, 아시아‧태평양지역 석유소비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까지 이어진 높은 석유수요 증가율은 석유기업으로 하여금 기존 투자에 대한 불안을 덜고 새로운 투자와 기술을 채용하여 효율적인 시설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또한 세계 10위권의 내수시장 규모는 석유기업이 시장에서 직면하는 위험을 감소시켜 대규모 시설과 기술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하였다.
다음으로 국내 석유기업의 구조와 전략은 또 하나의 경쟁력 원천이 되었다. 현재 활동 중인 석유기업들이 대기업그룹에 소속되어 성장하여 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석유기업의 구조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 대기업그룹들은 과거 고도 성장기를 통하여 각 그룹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기업군집들을 형성하였다.
이 기업군집들은 각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 나가는 주력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각화 전략의 결과가 낳은 지원기업군과 관련기업군으로 구성된다. 특히 선발 석유기업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소속된 기업그룹 내의 석유관련 기업군집은 석유화학기업, 석유수송기업, 여타 에너지자원기업 및 에너지설비기업 등을 포괄하고 있다. 또한 석유기업들은 1990년대 정부가 추진한 업종전문화시책에서 모두 해당 대기업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선정되어 전략적으로 육성되었다.
당시 업종전문화시책은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 조정에 목적을 두고 자원배분을 대기업그룹의 대표 주자에 해당하는 업체에 집중시키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석유기업을 주력 업종으로 하여 해당 기업그룹에서 형성된 석유 관련 기업군집이 전후방 연관효과를 통해 효율성을 창출하면서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정부는 짧은 기간 내에 석유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부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경제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가경제의 기간산업으로 석유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석유산업 초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은 불가피하게 광범위한 규제를 수반하게 되었다.
그런데 석유산업의 규모가 확대된 상황에서 정부규제가 존속됨으로써 많은 부분에서 왜곡과 부작용을 초래하자 정부는 1990년대 후반에 석유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자유화를 추진하였다. 즉, 석유산업에 대한 핵심적인 규제라 할 수 있는 진입규제, 가격규제, 설비규제, 수출입규제 등이 모두 폐지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까지 이어진 정부의 석유산업에 대한 보호적 규제와 지원정책, 그리고 1990년 후반 이후 전면적인 자유화 조치를 통한 경쟁정책은 국내 석유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경쟁력 원천들은 자연자원 의존적인 석유산업 특성에 비추어 원유부존도가 낮고 원유확보의 안정성이 취약한 우리나라 실정에서 석유산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과거 석유산업 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었던 국내수요 확대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석유수요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성숙단계로 접어들어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되었고 점차 포화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2000년대의 수출수요 증가는 국내수요 둔화에 따른 문제를 어느 정도 상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향후 아시아 신흥국 및 중동 국가들의 대폭적인 정제능력 확대가 예상되고 있어서 수출수요에 의존하여 국내수요 둔화에 대응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물론 확대된 국내 석유수요 규모는 앞으로도 우리나라 석유산업 경쟁력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종래 석유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경쟁력 원천들이 소멸되어 감에 따라, 석유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발전 동인과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석유제품 수출수요 확보와 더불어 해외시장 진출 전략이 요구된다. 석유산업은 소비지정제를 기본으로 하는 산업이므로 해외 하류부문에 대한 직접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해외 하류부문 진출에 있어서는 해당 국가의 석유수요 증가율, 정제시설 신증설계획, 하류부문에 대한 규제의 정도, 석유가격 정책, 경쟁기업의 활동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고 석유수요가 성장단계에 있는 국가를 진출 대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석유산업의 해외 하류부문 진출은 사업확대에 따른 이익기회의 증진은 물론, 국내 수요구조와 해당 국가의 수요구조 차이를 활용한 제품간 수급조정을 통해 정제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둘째, 국내 석유산업은 소요 원유의 전량을 해외에 의존하는 형편이므로 해외 석유개발의 확대와 원유도입선다변화, 유가변동성 대응 등 원유조달능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해외 석유개발은 새로운 자원민족주의 경향과 전통적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응하여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하고, 석유산업이 상‧하류부문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다. 원유도입선다변화는 공급중단 등 전통적 공급위험에 대처하고 중동원유의 아시아 프리미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가격변동성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은 원유가격의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감소시켜 석유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셋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에너지 수급구조는 물론 에너지 사용패턴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므로 석유의 환경영향(environmental impact)이 최소화 되도록 환경친화적인 석유의 공급과 이용을 도모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원료를 가공하고 제품을 공급하는 석유산업의 특성 상 환경영향은 생산단계(정제), 유통단계(수송), 소비단계(연소)에 이르는 전 연료주기(fuel cycle)에서 발생한다. 정제단계에서는 배연탈황 장치에 의해 대기오염을 방지하고, 에너지소비효율화를 위한 절약시설을 도입해야 한다. 유통단계에서는 오염사고 감시체제의 확립과 오염방제장비의 확충, 방제 전문인력의 양성 등 유류오염 방제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소비단계에서는 발생되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을 줄임으로써 대기오염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으므로 석유제품의 탈황 등 불순물질을 제거한 클린 석유제품 공급에 주력해야 한다.
넷째, 석유산업은 전통적인 석유제품 공급에 국한되는 산업이 아니라 에너지서비스를 공급하는 산업으로 전환해 가는 전략이 요구된다. 환경친화적인 고효율의 석유이용기기 개발을 위해 경유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 개발, 저 질소산화물 석유연소기기 개발 등에 타 업계와의 공동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석유산업에서 축적된 경험을 이용하여 가스·발전·지역난방사업 등 타 에너지산업으로 진출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도 투자하여 미래 에너지소비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석유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도록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합한 경쟁규칙을 마련하여 공정한 경쟁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석유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는 석유산업의 해외진출에 따른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타 산업과 연계한 패키지형 진출 지원, 동북아 역내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수출경쟁력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우리나라를 아시아 석유물류 및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관련 인프라 구축을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