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동진_네이버 영화평론가
바르셀로나 여행은 압도되는 경험으로 시작됐다. 프라트 공항에서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를 향해 도심으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제일 먼저 알아보게 된 건축물은 그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영화의 대부분을 촬영한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대표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도 이 도시에 막 도착한 주인공 마누엘라가 택시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는 첫 대상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아들 에스테반을 교통사고로 잃은 마누엘라는 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헤어졌던 남편 롤라를 찾아 참담한 심정으로 이곳에 왔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내다볼 때만큼은 순례자의 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숙소에 짐을 부리고 그곳을 다시 찾았다. 석재를 목재처럼 다룬 듯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하늘을 향해 올린 거대한 돌탑들이 경탄스러운 그 성당의 화려한 외양은 사진만으로 보아왔던 첫 방문자도 못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숨결이 곳곳에 살아 숨쉬는 도시지만, 그 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장 큰 야심을 가진 예술이 건축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예술적 야심의 핵은 상상력일 것이었다. 가우디는 꿈에 형체와 질감을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성당 동쪽 ‘탄생의 정면’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영속’에 등장하는 시계처럼 흡사 건물 자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줬다. 반면에 서쪽 ‘수난의 정면’의 조각들은 날카로운 직선을 드러냈다. 몸에서 모든 살을 발라낸 듯 각진 얼굴과 육체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상은 기묘한 감동을 안겼다.
자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성당 내부는 그 자체로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120년 넘게 짓고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이 건축물은 언제 마무리될지 여전히 모른다. 가우디는 이 작업에 40년 이상을 매달리고서도 자신의 생전에 완공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일에 헌신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까지 위대한 건축의 발원점은, 역설적으로, 영원한 시간에 대한 유한한 인간의 절망이 아닐까.
성당은 서로 다른 시간을 상이한 색깔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들어 완성된 부분은 하얗게 빛났지만, 묵은 세월의 흔적을 더께로 안고 있는 부분들은 햇살 속에서도 거무튀튀했다. 그러니까 결국 시간의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너무 거대한 것은 시야에 담기조차 어렵다. 성당의 전체 모습을 찍기 위해 동쪽 도로를 건너고도 모자라서, 연못이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자꾸만 뒤로 물러서야 했다. 한참 건물의 전모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가 문득 연못에 비친 성당의 그림자를 보았다. 흐린 연두빛 연못에 거꾸로 담긴 성당은 거대한 신기루처럼 여겨졌다.
순간 오리 한 마리가 연못을 가로질러 헤엄치자 허망한 신기루 같은 그림자마저 격하게 흔들렸다. 17년간 혼자 어렵게 자식을 키웠던 마누엘라는 눈 앞에서 아들 에스테반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봄으로써, 공들여 쌓아 올린 긴 세월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나 아들을 잃고 바르셀로나로 온 마누엘라는 다시 한 번 더 가슴 아픈 이별을 겪는다. 남편 롤라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어 마음을 나누게 된 수녀 로사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로사에게 에이즈를 옮긴 사람은 바로 롤라였다. 로사의 장례식이 열렸던 바르셀로나 서남쪽의 몬주익 묘지로 갔다.
영광과 탄식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 묘지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 선수가 두 팔을 번쩍 치켜 들며 마라톤 금메달의 영예를 누린 메인 스타디움은 바로 몬주익 언덕 너머 동쪽에 있었으니까. 삶의 그 모든 슬픔과 기쁨도, 멀리서 보면 언덕의 이쪽과 저쪽 정도의 차이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이승 밖의 세상을 피안(彼岸-저쪽 언덕)이라는 말로 지칭하는 것을 보면, 삶과 죽음의 간격도 그리 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묘지는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죽음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유럽의 묘지들을 꽤 많이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호화롭고 깔끔하게 단장된 곳은 처음이었다. 울창한 전나무 길을 걸어서 천천히 언덕을 오르자 꽃으로 장식된 납골함들이 벽에 빼곡했다. 반대 쪽으로는 십자가와 천사상을 곁들인 무거운 대리석 묘지들이 즐비했다.
맑은 겨울 햇빛은 각양각색의 돌에 부딪쳐 곳곳에서 부서지며 보석 같은 빛을 냈다. 그리고 묘지 앞에는 눈부시게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햇살과 바다와 죽음이 이토록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니. 무거운 돌 속에서 안식을 취하는 죽음은 햇살을 받으며 가끔씩 저 멀리 대양을 동경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르자니, 이곳 계단에서 17년만에 만났던 마누엘라와 롤라가 저절로 떠올랐다. 로사의 장례식을 마친 마누엘라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인사하는 롤라에게 “당신은 전염병 같은 존재”라고 쏘아붙인다. 수술로 만든 가슴과 타고난 음경을 함께 지닌 여장 남성 롤라는 예전 아내의 공격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항상 도가 지나쳤지. 하지만 지금 난 너무 지쳤고 또 죽어가고 있어.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되어서 기뻐.”
언덕 꼭대기의 납골함들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는 납골함의 최후 번호는 1만4847번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납골함 중 한 곳에는 날개를 펼친 채 고개를 떨구고서 비탄에 빠져 있는 천사상이 새겨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사한 겨울 날. 내리 쬐는 강한 햇살은 그 작은 납골함에서도 빛과 어둠의 영역을 명확히 나누었다. 얼굴을 파묻은 천사는 빛에 드러나 있고, 밝게 웃는 고인의 사진은 그늘 속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흡사 빛이 어둠을 껴안고 흐느끼는 양상이었다.
인간은 단 한 번 죽는다. 그리고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죽음은 많은 경우 회한으로 가득 찬 실패의 경험이 된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 롤라의 삶은 실수와 잘못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하지만 햇살 가득한 겨울 묘지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진 것은, 지금 누군가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의 눈물은, 어둠을 향한 빛의 슬픔은, 언제나 소중하다.
언덕 꼭대기 근처에는 새로운 납골함으로 채워 넣을 또 다른 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죽음들을 기다리는 텅 빈 벽을 바라보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다. 텅 빈 벽이 만든 그늘 속에서 쉬고 있던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낯선 인기척에 노란 눈동자를 번뜩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압도적이었다면, 안토니오 가우디의 또다른 걸작들인 구엘 공원과 카사 밀라는 환상적이었다.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에 위치한 구엘 공원은 환상의 영토가 곡면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뱀 모양 같기도 하고 파도 형상 같기도 한 길고 긴 돌 벤치에서부터, 과자와 초컬릿으로 만든 듯한 경비실까지, 부드러운 곡선이 꿈의 세계를 그려냈다. 애초 부유층의 거주지로 만들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누구도 판타지 속에 들어 앉아 일상을 살 수는 없으니까.
도시 전체에 미친 거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가우디는 근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었다. 자연과 문명,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이곳은 그가 언제나 세계의 바깥을 바라보려는 자였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구엘 공원에서는 계단도 석굴도 모두 기울어져 있었다. 기운 것과 굽은 것, 아슬아슬한 것들과 흔들리는 것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공원을 이뤘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따뜻한 세상을 이루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자와 에이즈에 걸린 수녀, 남자의 육체로 여자의 정신을 꿈꾸는 자와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자가 모여 구원과 희생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카사 밀라는 바르셀로나 중심을 관통하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독특한 외양으로 유난히 튀는 건물이었다. 구불구불한 테라스로부터 건물 가운데를 원통형으로 비워놓은 형상까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이 건물은 무엇보다 옥상이 인상적이었다. 물결치듯 곳곳에서 헤어지고 만나는 계단과 기기묘묘한 형상의 굴뚝으로 이뤄진 그곳은 고대의 거석 문화와 외계의 첨단 문명을 합쳐 꾸민 미래의 공간 같았다.
해질녘 카사 밀라의 옥상 난간에 우두커니 서서 푸르스름하게 밀려오는 어둠을 피부로 느끼고 있자니, 그 모든 현실감이 일거에 사라졌다. 거대한 과거와 창대한 미래 사이를 우연한 점 하나로 간신히 잇고 있는 현재라는 시제가 못내 위태로웠다.
일정을 마칠 때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극중 로사가 죽기 전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던 델 마르 병원 근처 바닷가였다. 델 마르 병원에서 정성으로 간호해주던 마누엘라에게 로사는 뱃속의 아기를 가리키며 “우리 둘의 아이로 낳을 거에요”라고 말한다. ‘성스러운 가족’이란 뜻을 갖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바르셀로나 첫 장면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핏줄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마누엘라와 로사는 이미 가족이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열일곱살 에스테반의 어머니였던 마누엘라는 남편 롤라의 아기를 가진 로사의 어머니였으며, 심지어 남편 롤라의 어머니이기도 한 존재였다.
죽음은 단 한 순간이지만, 삶은 수많은 순간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모성은 요동치는 그 많은 순간들의 아득한 본향(本鄕)이다. 인물들의 죽음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끝내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편을 감싸고 있는 모성의 따스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해 저무는 바닷가 거리에서 나이 든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마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그들의 음악은 대단할 게 없었지만 더없이 푸근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 속에서, 음악이 햇살처럼 빛을 내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헤어졌던 남편을 찾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감동적인 드라마. 스페인의 악동으로 불리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찬사와 경멸을 동시에 받았던 그전까지의 작품세계로부터 도약을 보여준 걸작이다. 모성의 본질에 대한 알모도바르식 탐구를 펼쳐 보이는 이 작품은 개성 넘치는 스타일에 구원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아로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