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인표_경향신문 산업부 선임기자
국내에서 생산된 액화석유가스(LPG)가 수입산 LPG보다 차별을 받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원유 정제과정에서 생산하는 국산 LPG은 ℓ당 16원씩 석유 수입부과금을 물고 있다. 반면 수입 LPG는 수입 부과금을 면제받고 있다. 할당 관세도 수입 LPG에는 2%가 붙지만, 국내 LPG 생산을 위해 들여오는 원유에는 3%를 매기고 있다. 똑같은 LPG면서도 단지 국산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국내 LPG 유통 경로는 두갈래다. LPG 수입사인 SK가스, E1 2개사(최근 삼성토탈이 LPG 수입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물량이 미미해 일단은 2사 체제로 간주)를 통해 들여오는 수입 물량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4개 정유사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국내 생산 물량이 그것이다. 관련 업계는 정유 4사가 LPG를 생산하면서 부담한 석유 수입부과금이 연간 900억원대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LPG 생산 물량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은 서둘러 국내 생산분과 수입산과의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석유 수입부과금 제도는 1979년 처음 도입했다. 수입하는 석유에 부과금을 매긴 돈으로 석유기금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에너지특별회계로 바뀌었다. 정부는 1989년부터 수입산 LPG에 대해 부과금 면제를 시작했다. 당시 LPG가 택시나 서민용 연료로 많이 쓰이는 점을 감안한 친서민 정책의 일환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LPG 시장 점유율이 휘발유나 경유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급량과 수요량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초 LPG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던 국내 전문가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휘발유와 경유가 다양한 차종으로 탄탄한 영역을 구축하면서 자동차 시장을 확실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2005년 확정한 2차 에너지 세제 개편으로 LPG에 경유나 휘발유보다 세금을 덜 매기면서 LPG 수요가 갑자기 크게 늘었다. LPG는 공급량이 크게 늘면서 휘발유·경유와 함께 대표적인 연료로 뿌리를 내렸다. 무시하기에는 비중이 너무 커져버렸다.
정부의 세제 지원에 힘입어 우리나라 LPG 차량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LPG 소비량을 충당하지 못해 외국에서 LPG를 앞다퉈 들여와야 했다. LPG는 국제 가격도 유일한 공급원인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일방적인 통보로 결정된다. 다른 공급원이 없기 때문에 가격 결정의 칼자루를 아람코가 쥐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민 연료라고 하면서도 LPG 값이 최근 꾸준히 올라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도 이같은 가격 결정 구조 때문이다.
국내 생산 LPG를 역차별한 결과는 무엇인가. 수입산 LPG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게 된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LPG 공급량은 수입산과 국내 생산량을 합쳐 1억115만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2001년보다 21.6% 늘어난 규모다. 이중 수입산 LPG은 전체 65.3%(6603만배럴)를 차지했다. 2001년보다도 물량은 37.4% 늘어났다. 반면 국내 생산 물량(3512만배럴)은 전체 비중이 34.7%로 떨어졌다. 2001년보다도 10.8% 줄었다. 2001년만 해도 수입 LPG는 전체 수요 55%를 충당했고 국산 LPG가 나머지 45%를 책임졌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내 생산 LPG가 수입 LPG에 맥을 못춘 것이다.
이처럼 LPG 수입이 늘어난 것은 LPG 사용 차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LPG 자동차는 지난 2월말 현재 240만8195대가 등록해 전체(1742만7147대)의 17.3%를 차지했다. 2001년(142만대)보다 69% 늘었다. LPG 차량의 대수나 전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경유 자동차(631만2361대)는 전체 27.9%, 휘발유 자동차(861만985대)는 전체 49.4%를 각각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한때 미미한 수준이던 LPG 자동차가 거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LPG 자동차 등록대수가 미미하다. 미국은 2007년 기준으로 20만대에 불과했다. 전체 자동차(2억4800만대)의 0.08% 수준이었다. 대수로 봐도 우리가 220만대나 많고, LPG 차량이 자국 전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미국보다 200배 많은 셈이다. 다른 선진국도 LPG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는 LPG 경차까지 쏟아내고 있다. 해외 시장도 불투명한 마당에 일단 생산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LPG를 차량 연료로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연비가 낮다.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셈이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NF 쏘나타 평균 연비는 경유가 ℓ당 13.302㎞, 휘발유 11.428㎞인 반면 LPG는 8.640㎞에 불과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각 연료의 1ℓ당 세전 가격을 보면 LPG는 629.25원, 경유는 673.49원인 반면 휘발유가 736.58원으로 나타났다. LPG가 연비는 나쁘지만 세전 가격은 가장 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측면을 두루 고려한 ㎞당 연료비용은 어떨까. 세전가격을 연비로 나누면 알 수 있다. LPG 차량이 72.82원으로 가장 비쌌다. 이어 휘발유 차량(64.45원)이었고, 경유 차량(50.63원)이 가장 쌌다. 다시 말해 연료 1㎞를 넣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LPG가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LPG는 연비는 떨어지지만 미세먼지 배출이나 매연가스 배출이 적어 친환경 연료라고 관련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답은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기준으로 자동차 세금을 매기고 있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차량을 선호하는 수밖에 없다. 서유럽은 2008년 기준 등록 자동차의 53%가 경유 자동차를 차지하고 있다. 경유는 연비가 좋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전기자동차가 상용화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가장 친환경적인 자동차로 경유차(클린디젤차)를 꼽고 있다.
LPG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처음에는 특별한 사용처 없이 그냥 태워서 버리던 쓸모없는 연료였다. 그러다 1980년대 다양한 수요를 개발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취사, 난방, 산업용으로 써다가 1982년 영업용 택시 연료로 LPG를 쓰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장애인용 자동차, 소형 화물차로 LPG를 연료로 썼다. 1995년에는 대형 화물차도 LPG를 사용했다.
장애인이나 소형 화물차주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해서 '서민용 연료'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버리던 연료를 사용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추월하면서 정부는 LPG를 수입하게 된다. 1984년 LPG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LPG 전문 수입회사 설립을 인가한 것이다. 지금의 LPG 수입사인 SK가스와 E1이 그때 생겨났다.
문제는 연료 가운데 LPG의 연비가 가장 나쁜데도 해마다 사용량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만 해도 경유는 해마다 평균 2%씩, 휘발유는 0.1%씩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LPG는 연평균 6.3%씩 증가했다. 여기에는 휘발유와 경유에 비해 LPG에는 세금이 적게 붙어 LPG가 값싼 기름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정부가 심어준 것도 한 몫을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수송용 LPG 세계 1위라는 자리를 유지하는 동안 엄청난 LPG가 국내로 들어왔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8년에만 5조2000억원 어치 LPG를 수입했다. 지난 10년 동안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21조5764억원 어치 LPG를 수입했다. 반면 원유 정제를 통해 생산한 휘발유와 경유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아 수출을 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수출한 '국산' 휘발유는 11조1123억원(1억6991만배럴), 수출 '국산' 경유는 60조4079억원(8억9149만배럴)어치를 기록했다. 수출 없이 수입만 하는 물품에 부과금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손실이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국내 LPG는 수요만 조절한다면 LPG는 굳이 수입할 필요가 없는 기름이라면서 엄청난 외화를 주고 LPG를 수입해 쓰고 있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경유를 수요가 남아돌아 외국에 수출하고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LPG는 수입해 나랏돈 뭉칫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지식경제부는 에너지 정책은 세금 문제와 맞물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다른 정부 부처와 협조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석유 수입부과금 역차별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국내 생산 LPG에 대한 수입 부과금을 돌려주거나 수입 LPG에 대해 부과금을 매기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국산 LPG와 수입 LPG끼리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말이다. 2가지 방안 가운데는 세수가 줄더라도 국내 생산 LPG에 대한 부과금을 없애는 편이 낫겠다. 조세 형평성 원칙에다 시장의 왜곡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면 말이다. 국내 생산 제품보다 수입 제품을 우대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생산 기반이 있음에도 수입이 늘어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휘발유와 경유는 남는 물량을 수출하고 LPG는 모자라는 물량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현상은 더 이상 곤란하다. 이제는 정부 당국이 나서서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점을 해결할 때다. 마침 정부가 에너지 세제 개편을 포함한 석유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을 재점검한다고 한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