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의 환경변화와 대응방향

글 | 김진우_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화석에너지를 대표하는 에너지원인 석유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녹색성장정책 등으로 새로운 위상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포스트-교토체제에 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25개국 정상들이 모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갔다. 이미 1992년 UN 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기본협약이 채택되었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2005년 2월 16일 발효된 바 있다. 최근에는 2012년 이후 선진국의 의무부담에 대한 협상이 UNFCCC(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차원의 특별작업반을 통하여 진행되어 왔었다.

코펜하겐 총회는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 대신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문만을 도출하고 총회 결정문에 ‘주요국이 합의한 코펜하겐 합의문을 주목한다'는 문안을 포함시키는 수준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은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향후 협상에서 중요한 준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하여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에는 장기적으로 지구 온도를 2℃ 이내의 상승으로 억제한다는 숫자만 들어가 있고 다른 숫자는 확정되지 않았다. 또한 교토의정서의 의무감축국(Annex I 국가) 및 비의무감축국(non-Annex I 국가) 체제에 따라 우리나라의 비의무감축국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의무감축국 및 비의무감축국 모두 감축목표 또는 감축행동을 UNFCCC 사무국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같은 맥락에서 선진국들은 이미 자원의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이용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녹색산업’과 녹색기술’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추구하는 녹색성장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요소투입형’ 성장방식은 환경을 해칠 뿐 아니라 자원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요소의 대량투입에 의존하는 성장방식은 지속가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녹색기술 육성과 환경규제를 통해 관련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분야의 경우 이미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수소차 등 저탄소 차량 제작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앞서가기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기조로 삼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정책 시행에 따라 세계적으로 석유의 사용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석유수요도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석유산업의 성장과 발전은 정부의 초기 육성정책에 이어 대기업그룹이 주력업종으로 선택하여 육성해 왔다는 점과 더불어 내수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었다는 점이 주요한 원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석유수요는 산업의 성장과 국민소득의 향상, 그리고 자동차 대수의 급속한 증가에 힘입어 지난 1970년대 연평균 11.3%, 1980년대 연평균 6.9%, 1990년대 연평균 7.6%로 이어지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기 직전인 1987년에서 1997년까지 10년간의 연평균 석유수요 증가율은 무려 14.2%를 기록하였다. 석유제품의 내수시장이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석유기업들로 하여금 대규모 시설과 기술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하였으며, 기존 투자에 대한 불안을 덜고 새로운 투자와 기술을 채용하여 효율적인 시설을 구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내 석유수요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국내 석유수요는 1998년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전년대비 15.6% 감소한 이후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되어 세계 금융위기 직전 연도인 2007년까지 연평균 1.9% 증가하는데 그쳤다. 수송용 연료 소비가 둔화되었고 가정, 상업, 산업용 연료가 가스와 전력 등 타 에너지원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석유수요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위축과 함께 감소하였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2009년의 수요규모가 1997년의 수요규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향후 국내 석유수요는 성숙단계를 지나 점차 포화단계로 이행함에 따라, 석유수요 증가율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8년 8월 정부가 수립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국내 석유수요는 시나리오에 따라 연평균 0∼0.8%에 그칠 전망이다.

과거, 내수시장의 규모 확대는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세계 6위에 이르는 석유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석유를 공급할 수 있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석유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향후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해외 상·하류부문에 대한 진출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해외 유전개발에 적극 참여하여 상류부문과 하류부문의 연계성이 강화된 석유산업을 구축해야 한다. 유전개발과 생산, 정제, 판매에 이르는 수직적 연계를 바탕으로 하는 석유산업 특성에 비추어 석유의 부존자원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중요한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상류부문 진출은 앞으로도 석유산업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전개발사업은 탐사광구와 생산광구 사업 간의 적정 투자비율을 유지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으로 해외에 정유공장과 주유소를 확보하는 등 하류부문에도 진출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고 석유수요가 성장단계에 있는 국가를 진출대상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석유산업이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이용하여 타 에너지산업으로 진출하는 등 종합적인 에너지공급 산업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가스사업, 발전사업 및 지역난방사업으로의 진출과 보일러, 냉난방기기, 조명기기 등 석유제품 사용기기의 제조사업으로 진출하여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방안이 있다. 그리고 석유제품의 판매에 더하여 품질관리, 고객관리, 하위 유통업체에 대한 경영지도 등 각종 서비스를 결합하여 판매하는 산업으로 이미지를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석유의 환경친화적 공급과 이용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정제단계에서는 배연탈황 장치에 의한 대기오염 방지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오일샌드나 초중질원유 등 비전통원유의 이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등 혁신적인 석유정제기술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 수송단계에서는 연안 유조선의 수송분담률이 높은 점을 감안하여 유류 유출사고에 대비한 방제장비의 확충과 관련 전문인력의 양성이 요구된다. 소비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탈황시설 능력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경친화적인 석유이용기기 개발을 위해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 개발, 저 질소산화물 석유연소기기 개발 등의 분야에 타 업계와의 공동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수소에너지 시대를 염두에 두고 석유로부터 안정적이고 값싼 수소제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고품질·고효율의 수소제조기술을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석유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따라 타 에너지원에 의한 석유대체를 최대한 추진한다고 해도 석유는 공급잠재력, 편리성,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향후 수십년동안 주종 에너지원으로서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우리 석유산업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새로이 정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