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마당]

한 여름에 읽는 책, 추리소설

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여름에 즐겨야 제맛인듯한 것들이 있다. 영화에서는 공포영화, 소설 가운데에서는 추리소설이다. 사실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여름에 더 그 즐거움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추리소설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인 책 읽기”라는 말이 있다. 추리소설의 모든 문장은 마지막 진실을 위해 철저하게 짜여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재미로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만큼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는 다른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것임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와 독자의 머리싸움이 게임의 재미 못지 않고, 범죄 세계를 엿보는 묘한 호기심을 자극해대는 추리소설 특유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 순간 범인이 밝혀지는 클라이막스는 늘 비슷한 듯 해도 언제나 사람을 잡아끌기 마련이다. 그 익숙함속의 새로움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추리소설의 맛이다.

어린 시절 이후 추리소설을 잊고 살았다면, 또한 추리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올 여름에는 추리소설과 한번 친해져보면 어떨까? 출판계에서 한때 사라졌던 추리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소생하고 있다. 새로운 추리소설은 여전히 드물지만 검증된 고전 추리소설들이 다시 인기를 모으면서 재출간 붐이 일었고, 그래서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던 유명 작품들이 다시 서점에 등장한 것이다. 원래부터 성인을 위한 장르로 등장했던 추리소설이 국내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축약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같은 고전 복간 바람 덕분에 이제는 추리소설의 걸작들을 원전 그대로, 일본 것을 옮긴 중역본이 아닌 제대로 된 번역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셜록 홈즈나 뤼팽 같은 유명 고전은 물론 열성 추리팬들사이에서만 인기 높았던 잊혀진 작품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새로 나온 추리소설들은 예전 ‘살 사람만 사는’ 바람에 조악한 판형에 시대착오적인 편집 일색이었던 기존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깔끔한 편집으로 만들어져 훨씬 읽기 좋아졌다. 여기에 올해에는 외국에서 크게 히트 친 굵직한 새 추리소설들도 여럿 선보였다. 그래서 추리소설과 다시 친해지려면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족한 한해가 될 법하다.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최신작으로는 단연 <다빈치 코드> <단테 클럽>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책은 ‘인문학적 추리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처럼 역사적 사실과 인문학의 세계가 가미된 ‘지적 추리소설’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가미해 역사속 미스테리를 쫓는 다는 점에서도 현대 추리물의 계보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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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에서 700만부가 팔리며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다빈치 코드> ( 2/댄 브라운 지음/베텔스만 펴냄/각권) 는 국내에서도 바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추리소설로서는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소설은 특히 기존 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설정에서 충격을 많이 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은 막달렌느와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았으며, 그 자손들이 지금까지 은둔하며 이어지고 있다는 설정이 화제가 되었다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수수께끼같은 암호를 남기자 관장의 손녀와 우연히 사건에 얽히게 된 미국 역사학자가 그 암호의 비밀을 파헤치며 진범을 찾는다는 것이 줄거리다. 그 암호를 푸는 열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명화속에 숨어 있다는 내용이다.

<다빈치 코드>의 장점은 일단 다른 추리소설보다 읽기가 편하다는 것이다. 너무 비비꼬지도 않고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 진도가 잘나가서 빨리 읽을 수 있다. 대신 결말은 다소 허탈한 면이 있는데, 추리적 재미보다는 책 중간 중간 들어있는 서양 문명사의 이면에 대한 지은이의 해석과 상식들이 더 빼어난 편이다. 정통 본격 추리물보다는 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 추리적 재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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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추리소설다운 복잡한 구성, 그리고 인문학적인 향기를 더 짙게 느끼고 싶다면 역시 지난해   <다빈치 코드>와 함께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단테 클럽>( 2/매튜 펼 지음/황금가지 펴냄/각권 9500)이 있다. 현대가 무대인 <다빈치 코드>와 달리 아예 19세기말 미국 보스턴을 무대로하는 정통 ‘역사 추리’ 소설이다. 실제 미국 문학사의 주요한 거장들인 시인 롱펠로우와 로웰, 찰스 엘리엇 노턴 등과 함께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에드거 앨런 포, 호손, 멜빌 등 유명 작가들이 소설 등장인물로 나와 더욱 흥미롭다.

1865년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롱펠로우가 유명한 고전인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기 위해 동료들을 모으면서 ‘단테 클럽’이 결성된다. 그러나 자유로운 문학사상을 배척하던 당시 미국 문학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들 단테클럽의 활동에 대해 방해작업을 펼친다. 문단의 보수성과 함께 <신곡>이 담고 있는 가톨릭 사상이 들어와 자칫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신교에 타격을 입힐 것에 대한 우려가 함께 작용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보스턴에서 유명 인사들이 참혹하고 기괴한 방법으로 연달아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수사 결과 살인사건들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묘사된 형벌을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밝혀지고, 단테 클럽 멤버들도 혼란에 빠지는 가운데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든다.

<단테 클럽>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이 탄탄하며 무엇보다도 지식인 사회의 허위의식을 잘 보여주면서 이를 추리와 잘 접목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와 같은 2권 분량이지만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다. 대신 ‘인문학적 추리소설’적인 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들 두 추리소설이 최신 추리소설의 흐름을 보여준다면, 최근 복간되거나 뒤늦게 소개된 고전 추리소설의 걸작들은 추리소설이 왜 인기를 얻고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고전 추리소설들은 무엇보다도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탐정’들이 등장하는 것이 고전 추리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가 비교적 최근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갖는 의문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왜 탐정이 나오지 않느냐”는 것일 정도로 요즘 추리소설들은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 상황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무엇보다도 추리 소설의 흐름이 한동안 첩보와 미스터리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이란 역시 탐정이 등장해야 추리소설 답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최신작보다는 오히려 검증된 고전들이 제격이다.

최근 다시 국내에서 제대로 선보인 주요 고전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추리전문 출판사인 해문출판사에서 펴낸 ‘파일로 반스’  시리즈다‘파일로 반스’는 미국의 추리소설작가 S.S.반 다인이 만들어낸 주인공 탐정의 이름으로 그가 등장하는 책은 모두 ‘~살인사건’이란 가장 기본적인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우선 <가든 살인사건><카지노 살인사건><드래건 살인사건>(각권 9000) 3권이 먼저 나왔다.

반 다인은 미국 추리소설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로 정통 추리물을 대표하는 작가다. 에드가 앨런 포에 의해 추리소설이 탄생한 곳이 미국이지만 추리소설이 꽃을 피운 곳은 셜록 홈즈와 뤼팽이 활약한 유럽이었다. 포 이후 이렇다할 주요 작가가 없던 미국 추리소설계에 등장해 미국 추리소설을 궤도에 올려놓은 작가가 바로 반 다인이다. 반 다인은 이 파일로 밴스라는 치밀한 머리싸움을 즐기는 명탐정을 만들어 인기를 누리며 미국 추리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의 비극> 등의 작품과 탐정 드루리 레인, 엘러리 퀸으로 유명한 엘러리 퀸(소설 속 탐정 이름과 필명이 같다)이 바로 반 다인의 성공에 자극받아 추리소설을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반 다인의 주인공 파일로 반스는 한마디로 무척이나 잘난척하는 인물이다. 엄청나게 박식하고 머리가 명석한 이 탐정은 다른 탐정들과는 달리 범인의 심리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의 심리 작용을 파고드는 ‘심리분석’ 추리로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수법을 즐긴다. 범인의 사소한 실수를 찾아내 기발한 추리로 비밀을 풀어내는 전형적인 탐정을 좋아하면 이 파일로 반스 시리즈를 권하고 싶다. 홈즈나 뤼팽처럼 싸움이면 싸움, 두뇌면 두뇌, 변장이면 변장 모든 것에 완벽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고전 추리소설의 주인공들보다 한층 발전해 지식과 과학의 힘으로 범인을 쫓는 현대적 탐정의 모습을 정립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추리소설을 맛보고 싶다면 단연 G.K.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 5/북하우스 펴냄/각권 9500)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 이 책은 정말 추리소설 쪽에 관심이 있는 분께 권한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너무 개성이 강해 다른 소설들과는 추리소설의 구성은 물론 추리 방법이나 그 매력이 모두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 추리소설과는 달라도 전혀 다른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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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주인공인 브라운 신부부터 기존 탐정들과 크게 다른 인물이다. 직업이 뜻밖에도 ‘신부’라는 점도 독특하고, 그 외모도 탐정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짜리몽땅하고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이 괴짜 신부는 오히려 어리숙하고 멍청해보일수 정도다. 그러나 그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으로 사건을 풀어낸다. 그 사건들도 기존 추리소설처럼 거창한 살인사건보다는 잡다한 절도 사건이나 실종사건 같은 사소한, 그러나 묘한 사건들이 많다. 마치 환상소설같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기발한 추리로 정통 추리물 이상의 재미를 주는 짧은 단편들이 이어진다.

추리소설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맛보고 싶다면, 홈즈 같은 탐정과는 다른 탐정을 만나보고 싶다면, 일단 전집 5권 가운데 1권을 사서 첫 이야기 <푸른 십자가>부터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 짧은 단편이 왜 추리소설사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거론되는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브라운 신부와의 궁합은 맞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