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 바로 보기
- 신기루 쫓기 전에 현실부터...
글 | 전병역_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이달 12일 현대자동차는 울산에서 언론을 상대로 SUV인 투싼의 수소연료전지차 모델 시승회를 가졌다. 스위치를 켜자 소리 없이 전기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순간 가속력도 좋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해 시속 100㎞까지 내는 데 7초 정도 밖에 안 걸렸다. 4명을 태우고 오르막 오르는 데 힘도 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수소연료차를 많은 일반인이 타려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걸릴 전망이다. 무엇보다 현재 한대당 생산 단가가 2억원 정도로 비싼 탓이다. 수소연료차의 현실은 세계적으로 친환경, 저공해 차에 대한 현주소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장면이다.
도요타, GM, 폭스바겐에 이어 고급차 브랜드인 BMW 등도 저마다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여념이 없다. 마치 곧 전기차가 널리 보급되고 수소연료차까지 탈 수 있을 것처럼 들린다. 미국의 한 연구소는 지금부터 전기차를 보급하기 시작해도 10년 뒤 전체 자동차의 10% 정도만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석유 절약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얘기다.
미래형 차의 현실은 아직 멀리 있다. 어떤 차든지 대중들이 상대적으로 싼 값에 사서 합리적으로 굴릴 수 있어야 한다. 하이브리드차가 상용화에 나섰지만 전면적인 전기차 등은 배터리 성능과 가격 문제를 뛰어넘는 게 급선무다. 일부에서는 전기차 사고시 감전 위험까지 거론하지만 기술적으로 이런 문제는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석유연료를 쓰는 엔진 차량이 상당기간 주류를 이룰 것이란 데 이견이 없다. 나아가 이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와 맞물려 특히 경유 엔진을 새삼 재조명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아우디그룹과 프랑스 푸조 등에서 발전시켜온 고연비 ‘클린디젤’ 엔진이 당장 손에 잡히는 대안이란 점에서다.
클린디젤(엔진)은 정의하기 힘들지만 보통 고연비와 저공해를 실현한 경유(엔진)을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직분사 디젤 엔진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고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저공해 장치나 촉매제까지 한 묶음이다.
연비는 차급에 따라 달리 평가해야 하지만 승용차의 경우 ℓ당 15㎞ 안팎의 연비를 실현하는 편이다. 최근 새로 나온 소형 디젤차나 디젤하이브리드카의 경우 ℓ당 20~30㎞대 연비를 자랑한다. 일찌감치 TDI라는 직분사(연료를 연소실에 직접 정밀, 고압으로 뿌려주는 기술)에다 터보를 더한 엔진을 개발해온 폭스바겐이 대표적이다. ‘친환경차’의 대표격으로 대접받아온 도요타 프리우스와, 혼다 인사이트를 제치고 ‘2010 월드그린카상’을 거머쥔 것도 폭스바겐의 폴로라는 디젤차다.
1200㏄ TDI 엔진을 가진 폴로는 유럽 공인연비가 ℓ당 31㎞나 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87/㎞이다. 저공해차의 대명사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프리우스의 한국내 공인연비 29.2㎞/ℓ와 80/㎞에 버금간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래에 연료전지 등의 성능 개선과 가격 인하가 가능하기 전에 클린디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로버트보쉬의 안토니오 아비지뇨 디젤시스템 연구개발 어플리케이션 연구소장은 최근 ‘그린카 전략포럼’ 국제세미나에서 “세계적으로 전기, 수소 등 대체 연료 친환경차가 부각되지만, 오는 2020년까지는 여전히 가솔린과 클린디젤 차량이 현실적인 최선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박용성 박사도 “상당기간 동안 클린디젤이 가장 유용한 대안이 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차도 디젤엔진과 결합하고, 수동변속기 등과 접목하면 연비 개선효과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경유차라고 하면 “매연차, 시끄러운차, 기름 많이 먹는 덩치 큰 차”로 통하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이런 편견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조언들이다. LPG 업계나 전기차 업계처럼 이해당사자에 따라 견해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에너지관리공단의 수치를 따져보면 연료별 차이를 알 수 있다.
경유차는 대체로 세계적으로 관심사가 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더 적은 편이다. 구형 현대차 아반떼(1.6 수동변속기) 디젤 모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29g/㎞으로 휘발유 모델 148g/㎞보다 적다. 또 쏘나타 2.0ℓ은 디젤 모델(연비 13.4)이 1㎞ 당 이산화탄소를 194 배출해 가솔린 모델(연비 11.5)은 204보다 적고, LPi(연비 9.0)의 196와 같은 수준이다.
이때 한가지 까먹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연비다. 만일 ㎞당 같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더라도 연비가 좋으면 실제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연료를 절대적으로 적게 쓰면 바로 에너지 절약이고 온실가스와 매연 배출이 더 적다는 뜻이 된다.
대체로 경유차의 공인연비는 휘발유차보다 20~30% 높은 편이다. 과거 아반떼 1.6 디젤은 연비가 21.0㎞/ℓ로 경차인 마티즈 0.8(16.6㎞/ℓ)보다도 좋았다. 아반떼 디젤 연비는 또 아반떼 1.6LPI 하이브리드(17.8㎞/ℓ)보다도 크게 높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디젤 엔진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유가 가진 연료의 특성에 있다. 유럽 클린디젤 엔진 성능 개선 덕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경유 자체가 가솔린이나 LPG보다 발열량이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엇비슷하거나 더 적어서다.
에너지기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경유는 ℓ당 8450㎉ 순발열량을 가졌다. 휘발유 7400㎉와 LPG차 연료인 부탄가스 6302㎉를 넘는다. 쉽게 말해 같은 용량을 태울 경우 경유의 화력이 더 세다. 이는 연소 방식 차이와 결합돼 엔진의 힘과 연비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세계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억제량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런 면에서도 짧은 기간내 목표 달성에 클린디젤차 품질 개선과 확대 보급이 시급해 보인다. 유럽연합(EU)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 ㎞당 160g에서 2012년까지 130g 이하로 낮추도록 추진 중이다. 이탈리아, 스웨덴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 디젤차 비율은 약 19%로 프랑스 78%, 스페인 69%, 독일 45%에 비하면 너무 낮다. 그나마 버스나 SUV 등을 빼면 승용 세단은 극히 일부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디젤 모델 비중이 적은 일본,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도 클린디젤차에 보조금을 주고, 미국도 클린디젤을 친환경 엔진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의 TDI 엔진은 수년 사이 미국에서 잇따라 ‘올해의 엔진’에 꼽혀왔다는 것만 봐도 변화가 감지된다.
국산 자동차가 눈부시게 발전해왔지만 상대적으로 디젤차는 더디게 개선돼 왔다. 주요 이유는 ‘디젤엔진은 시끄럽고 매연가스가 많이 나오는 버스나 화물차용’이란 인식에서다. 현대·기아차가 2009년 ‘R엔진’이란 클린디젤 엔진을 내놓고 강화하고 있다.
쏘렌토부터 싼타페, 투싼, 스포티지까지 디젤 R엔진을 얹어 연비 개선효과를 봤다. 더불어 현대·기아차의 이미지도 유럽형 저공해 디젤차를 만드는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다만 아쉬운 대목은 여전히 국내는 디젤 세단은 찬밥 신세란 데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신형 YF쏘나타를 내놓으면서 쏘나타 디젤 모델은 아예 단종해버렸다. 연비가 더 높은 아반떼 디젤도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가 나오면서 사라졌다. 생산라인 문제 등 현실적 판단이 중요하지만 국내 디젤 세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오히려 폭스바겐의 골프나 파사트, BMW의 320d, 푸조의 308MCP 등 수입차가 국내 소비자의 클린디젤에 대한 눈을 뜨게 했다. 현대차가 올 3월 제네바모터쇼에 디젤하이브리드차인 콘셉트카 ‘아이플로우(i-flow)’를 공개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 차의 연비는 약 33㎞/ℓ로 알려졌다. 쌍용차도 국책 과제로 디젤하이브르디 엔진을 연구해 앞으로 디젤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일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측은 “국내 소비자들은 디젤차는 시끄럽고 진동도 커 싫어해 잘 안 팔리기 때문에 개발이 더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함이 엿보인다. 소비자 인식과 제조사의 경제성 판단도 있지만 세금 제도도 디젤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로 경유차에 5~20만원씩 부과하는 환경개선부담금 문제다.
클린디젤 덕분에 저공해차로 주목받으면서 2008년쯤 환경개선부담금 논란이 일었다. 이제 정부는 최근에야 유로4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한 경유차를 신차로 사면 환경개선부담금을 4년간 면제하고, 유로5 충족 경유차는 5년간 면제해주고 있다.
클린디젤을 신뢰하는 전문가는 아예 이 부담금 폐지를 주장한다. 정동수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적어도 유로5 이상 충족한 차량에 대해서는 환경개선부담금을 없애는 게 세계적 흐름에 맞다”고 강조했다.
디젤 연료의 오염배출 물질 자체도 과거보다 크게 줄인 데다, 차량에 매연저감장치(DPF)를 달아 미세분진 배출을 거의 막아주는 기술이 등장한 덕분이란 주장이다. 게다가 적어도 한국 경제상황에서 경유 활용도를 늘리는 것이 유리한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원유 정제과정에서 약 16% 얻는 경유는 절반 가까이를 수출하는 반면, 약 4% 나오는 LPG는 국내 소비량의 65%를 수입해오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LPG 용도를 서민들의 난방과 취사용으로 제약하며 세금을 깎아줬다. 그러다 택시와 장애인용 자동차에 LPG 엔진을 얹고 세제 혜택을 줬다. LPG도 연료 자체는 공해물질 배출이 적은 편이어서 저공해연료로 분류되지만, 수급 부담이나 연비를 따지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일반용으로도 LPG 엔진 차량이 확대되면서 수입이 늘어나고 가격이 올라가는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나아가 현대·기아차는 세계 최초로 LPG 엔진을 썪어 쓰는 하이브리드차까지 개발하기도 했다.
클린디젤도 완벽한 저공해, 저탄소 연료는 아니지만 적어도 유력한 대안으로서 세계적으로 검증받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에 국내 자동차 업계를 비롯한 산업계도 열량이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경유의 올바른 활용에 대해 보다 심도 깊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석유제품 수급 차원에서도 적절해 보인다. 특히 제조사들도 경유차 특유의 시끄러운 엔진음, 진동 등의 단점을 개선해야 소비자들이 닫힌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공업체들도 선박이나 중장비 엔진으로 디젤에 하이브리드까지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또 경험적으로 낡은 화물차, 버스 같은 경유차의 시커먼 배기가스를 DPF 같은 시스템을 강화해 줄일 때 일반인의 인식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장기적으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가 정답일지 모르지만, 어떤 연료나 엔진 모델이라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전기차의 경우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화석연료나 배출된 이산화탄소, 2차 전지를 만들고 충전하는 데 쓰이는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물론 디젤이나 가솔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어느 한 연료로만 대체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각 나라가 처한 환경과 기술적인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 가솔린차와 디젤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의 현실적 비율을 산출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소비자들은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값싸면서도 친환경적인 연료를 쓰도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정책 당국과 전문가, 언론, 기업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