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산업의 국가기여도와 경쟁력 강화 방안

글 | 천근영_에너지경제신문 편집국장

온실가스 주범, 가격담합, 폭리의 온상 게다가 유사석유까지......
1960년대 경제기반이라고는 전무한 상황에서 태동해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취를 지지해 온 정유산업, 정유업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치고는 다소 혹독하다. 온실가스 주범이라는 지탄은 글로벌 이슈라고 접어두더라도 가격담합을 통해 수십 년간 폭리를 취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쉽게 돈을 벌어왔다는 날선 시선이 갈수록 따가워지고 있다. 올릴 때는 몇 십 원대고, 내릴 때는 느지막이 겨우 몇 원 내리는 시늉만 한다는 푸념은 아예 상투어가 된지 오래다.

유가연동제, 주유소 상표표시제 폐지, 대형마트 주유소 진입 허용, 판매가격 공개, 판매업체간 수평거래 허용 등 정부 정책을 받아들이고 정해놓은 규정과 룰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도 귓바퀴로 흘려버리는 것도 현실이다. 정유제품이 세금이 절반이고, 원료가격 역시 변동 폭이 커 이윤이 리터 가격당 10원 남짓인 것도 현실임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단체나 국가권익위원회는 시민들의 불평과 불만에만 귀를 연 채 정유업계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로 수개월 동안 조사단을 구성해 심층조사까지 벌여 정유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잘 못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라며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려 하고 있다. 오히려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악덕기업’으로 매도되고 있다.

위안은 겨우, 최근 소비자시민모임 산하의 석유시장감시단이 정례 보고서를 통해 ‘국제 원유가격과 국내 휘발유가격의 변동이 내수 석유 가격에 비교적 적절히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것 정도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이 너무하다고 야속해 할 수도 없다. 석유협회 회장조차 전에는 국민들과 별반 다름없었다고 토로할 정도니까 말이다.
여하튼 이쯤 되면, 정유업계는 한 개그맨의 유행어를 패러디해 “정유산업 해 봤어?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 날마다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4대 수출 효자품목 석유제품

그런데 정말, 정유산업이 이런 대우밖에 받을 수 없는 혐오산업인가. 국가경제에 기여한 바 없이 국민의 피를 빨아 제 배 채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힐난에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올 초, 정부는 수출전략회의에 정유업계 대표자들을 불렀다. 이전에 지경부 수출전략산업 업종별 수출대책회의에도 여지없이 정유업계가 포함됐다.

왜?
정유업계를 빼놓고는 제대로 된 전략을 짜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정유업계는 총 매출액의 53%에 달하는 376억 달러를 수출로 벌어들였다. 431억 달러를 기록한 선박에 이어 2위다. 수출 효자 품목으로 알려진 반도체와 자동차를 모두 제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0%에 육박한다. 특히 국내 최초 정유사인 SK에너지와 역시 국내 최초 민간 정유사인 GS칼텍스는 각각 200억 달러 수출을 기록해 삼성전자에 이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전략적 투자와 앞을 내다보는 판단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다. 더 고무적인 사실은 이러한 실적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 하나만 놓고 봐도 국가경제의 기여도는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안에 있다.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나 경우 등유 등 석유제품 가격의 거의 60%가 세금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국민들은 다 안다. 세금이 뭔가. 국가를 운영하는 재원의 원천이다.

바로 이 세금, 국가 재정의 약 20%에 달하는 세금이 정유업계가 판매하는 석유제품으로 충당되고 있는 것이다. 세목은 크게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다. 거칠게 계산해 자동차가 생활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 1980년부터 현재까지 30년 동안 석유제품 판매로 거둬들인 세금은 거의 1000조원에 육박한다. 도로나 항만 철도 등 인프라시설은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 공원 등 국가 기반시설이나 복지사업의 거의 20%가 정유사가 판매한 석유제품에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한 일이다. 정유산업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최소로 잡아도 GDP의 15%는 되고, 최소한 향후 이삼십 년 동안은 이 정도의 영향력은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시장 그리고 전망

정유업계 매출의 60% 정도는 정유부분이다. 나머지는 석유화학 제품과 E&P(화학 및 석유개발, Exploration & Production)사업 등이다. 정유부분 가운데 수출은 50%, 특히 수출의 절반이 중국에 몰려있다. 물량은 약 1100만 톤. 지난 2006년 1200만 톤을 넘어선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유산업은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 큰 변수가 상존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가장 큰 변수는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의 경기다. 석유수요가 GDP 성장률의 바로미터라 성장률에 따라 수요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공급 측면에서는 정유사들의 설비증설과 가동률에 따른 공급량의 변화가 변수다. 작년 정유업계의 실적이 악화된 이유는 공급이 는 대신 예년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정유사들의 고도화설비 때문이다. 물론 유가 등락이 정유사들의 실적과 직결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유제품의 특성상 주원료인 석유의 가격 등락이 마진에 영향을 줘 실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유산업의 미래는 전혀 장밋빛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의 경기 회복으로 수출물량이 증가하고 있고, 작년 내리막을 걷던 정제마진도 상승세로 반전돼 수익이 호전되긴 했다. 금융위기 같은 외부 변수만 없다면 이 상황은 최소한 몇 년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장기적으로도, 역시 큰 흐름과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 쏠린다.

결론은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 부분의 실적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요 감소는 서서히 정유산업을 사양길로 몰아갈 것임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조짐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석유수요는 1998년 약 8.5% 증가를 한 것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향해 등락을 계속하다 2008년에는 급기야 마이너스 2%까지 떨어졌고, 작년에도 마이너스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파구를 찾아라

정유업계가 내놓은 자구안은 크게 두 가지다. 쌍두마차 격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 같은 에너지 종합기업을 표방하는 정유사들은 신성장동력에 사활을 걸고 있고, S-OIL과 현대오일뱅크 등 경영효율성 제고에 비중을 두고, 가장 경제성 높은 신재생에너지사업까지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SK에너지는 종합에너지기업을 선언한 이후 이미 연료전지를 비롯해 신재생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상황이고, GS칼텍스는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와 마진 축소, 고유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 등을 감안해 중장기 대안으로 연료전지 박막전지 탄소소재 및 E&P 등 신성장동력 확보로 설정했다. 그러나 S-OIL은 사이클 산업인 정제산업에서 머지않아 호황이 다시 찾아 올 수 있어 경영효율성 제고에 주력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내년 2011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온산공장 증설 프로젝트를 통해 적기에 석유화학사업을 확장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고도화설비를 최대한 활용해 정유산업 자체 경쟁력 제고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생존방안

한시적이지만 석유제품의 공급과잉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시나리오다. 여기에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침체가 불을 붙여 작년에는 복합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올해에는 플러스로 돌아서긴 했지만 정유업계의 도는 긴장감은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그러나 역시 정유업계가 취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안은 역시 본업인 정유제품의 경쟁력 제고다. 이 부분이 튼실하게 버텨줘야 사업다각화를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정제마진의 폭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정 프로세스 개선으로 생산능력과 자원의 효율화를 도모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최대한 에너지를 절감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경쟁적으로 설치한 고도화설비는 바로 정유업계의 고민이 투영된 야심작인 셈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와 비교할 때 원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모든 정제시설이 해안에 위치해 수송부터 애로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는 이미 격차를 벌인 상태다. 모두 다섯 곳에 정제시설을 운영하며 하루 2900만 배럴의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규모로는 세계 6위권이지만 단일 시설로는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아직 고도화설비 비율은 약 25%로 낮은 편이다. 경쟁국들과 원가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지만 정유업계가 풀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우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다. 단기적인 대안은 질 좋은 제품 생산과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높여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높은 세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밝혀 이해를 구해야 하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전자상거래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나 석유 현물거래소 설립을 통해 가격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너스카드제도 폐지,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또는 유류세분 신용카드 수수료 세액공제 필요를 통한 주유소 경쟁력 확보도 고려해봄직한 대안들이다. 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의 사용을 극대화하고 노후한 설비를 교체해 원단위를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또 경제적인 촉매를 개발하는 등 신기술을 적극 채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대안은 정유부분을 토대로 해 확실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길이다.

사업다각화를 통한 종합 에너지기업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E&P, 친환경에너지 그리고 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사업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간 인수합병을 통한 석유화학부문의 경쟁력 강화 또한 심사숙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작년 정유부문의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이 부문이라면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내외 기업과 전략적인 제휴도 고려할 만한 대안의 하나다. 규모의 대형화 신규 투자금액의 증가 신규시장 및 자원 확보의 중요성 등 단독으로 버거운 사업과 리스크가 높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전략적 제휴로 풀어가는 것도 방안의 하나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핵심역량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은 과감히 매각해 신사업에 자금을 투입해 새로운 재화를 개발하는 일이 바로 미래를 위한 준비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묵묵히 국가경제의 한 축을 훌륭히 담당해 온 정유산업, 정유업계가 가야 할 아름다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