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산업의 당면 과제와 향후 발전 방향

글 | 신의순_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들어가는 말

지난 2년간 세계경제의 극심한 침체 속에서 국내경제도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다행히 10년 전과는 달리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는 없었고 정부의 신속한 경기부양정책에 힘입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금년 들어 경기가 호전되면서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등의 업종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반면 정유업계는 1년 전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영업환경으로 인해 표정이 밝지 않다. 경제가 주기적으로 경기변동을 겪듯이 업종별로도 경기가 좋은 해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최근 어려움에 처한 정유업계도 현재의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여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국내 정유산업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확인한 후 향후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내적 여건

1997년 1월 석유산업 자유화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국내 정유업계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 하에 놓여 있었다. 정부의 석유정책은 에너지안보를 위한 공급물량 확보와 국내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저유가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정부가 1979년부터 징수한 석유사업기금은 석유비축과 석유개발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동안 기금의 일부가 국내 유가의 안정을 위한 유가완충기금으로 사용됨으로써 국제원유가격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가는 낮게 유지되어 에너지에 대한 과소비를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또한 정부는 최고가격고시제와 사후 수익률 정산 등의 방법으로 국내 정유산업의 수익률을 규제하였는데 이로 인해 국내 정유업계의 고도화 설비 투자와 탈황설비 투자 재원 확보에 애로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7년부터 유가자유화와 함께 석유제품의 수출입이 자유화되었고 1999년부터는 석유산업에 대한 신규진입 자유화와 석유정제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전면 개방되었다.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정부는 국내 석유제품의 유종간 가격이 왜곡되어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경유의 세금을 지속적으로 올려 국제수준으로 가격을 올려놓았다. 그 결과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유종에 관계없이 국제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저탄소 녹색성장 구현을 위한 4대 정책에는 에너지 저소비․ 저탄소 사회의 구현과 탈 화석에너지화가 포함되어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신재생 에너지 및 원자력의 비중 증대는 석유 비중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산유국의 원유를 수입하여 정제 후 외국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가동률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 여건

2000년대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인 국제원유가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였으나 현재는 70~8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석유 고갈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화석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의 사용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석유 소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원유가격이 쉽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해외의존도가 높고 석유개발투자의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상황에서 2030년까지 석유․가스의 자주개발율을 현재의 8% 수준에서 30%로 확대하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뿐 아니라 민간기업의 투자가 대폭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당면 과제

현재 석유업계가 당면한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업계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석유산업 자유화가 시행된 후 10년이 넘었지만 국내정유사는 국내외 여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즉 국내 수요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설비 확장은 공급 과잉으로 나타났고 생산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경질유 제품의 60% 정도를 수출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에서 소비하는 석유제품을 국내에서 정제하자는 소비지 정제주의의 당초 취지에도 맞지 않다. 앞으로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에 따라 화석연료의 사용 비중이 줄어들면서 중국의 정유시설 확장이 실현되면 국제시장에서의 경쟁 또한 치열해 질 것이다.

정유업계의 영업이익률이 다른 업종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정유업계가 반도체, 자동차, 철강, 전력과 같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없다. 국내 일부 대기업의 창업자들이 사회적, 법적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선도기업에 대해 자부심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국내정유사들은 자유화가 전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혁신과 기술 개발에 미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도 정부의 눈치를 보고 언론과 소비자단체에 끌려 다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여건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정유 4사가 안일하게 현재의 공생 전략으로 일관한다면 몰려오는 대내외적 변화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의 공생관계는 국내정유업계의 정확한 국제경쟁력 파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두 업종간의 수직적 통합관계는 석유제품 수출입 자유화의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의 분리는 충분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향후 발전 방향

첫째, 국내에서 생산된 경질유 제품에 대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시설 확장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중국 및 산유국의 정제시설 확장이 이루어지면 정유업계의 이윤 마진은 더욱 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유제품의 수출 증대는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환율이 높을 때는 수출이 촉진되고 환차익으로 인한 손실 보전이 가능하지만 현재와 같이 환율 하락이 본격화되고 원화 가치가 상승하게 되면 원유 도입의 이점은 있겠지만 석유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정제부문 투자 비율을 줄이고 해외자원개발 투자와 신재생에너지 등의 녹색산업 투자 비율을 높여 미래 경쟁력을 제고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정유업계가 다가오는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길은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risk-taking 하는 길만이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비결이 될 것이다.

둘째,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정부의 역할은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시장과 연동되어 적절하게 매겨지는지, 석유제품의 자유로운 수출입이 이루어지는지 등 국내 석유제품 시장이 원활히 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주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정유업계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휘발유에는 원유 수입단계에서 관세와 수입부과금, 판매단계에서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가 부과된다. 우리나라의 휘발유 소비 가격 중 세금 비중은 OECD 평균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다. 원유와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관세율 체계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 중국, 대만, EU의 경우에는 원유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5%의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원가인상요인이 된다. 또한 외국에서는 원유 수입에 대해서는 무관세 또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제품관세는 높게 매겨 자본집약적인 자국의 정유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손쉽게 재정수입을 얻을 수 있으나 국내 정유업계에는 원가부담이 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석유산업 자율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정유업과 석유화학산업과의 수직적 통합체제가 유지됨으로써 내부거래에 따른 가격보조 등의 불공정거래행위가 일어날 소지가 남아 있다. 따라서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종을 분리하면서 정유업계의 과잉설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산업은 산업전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의 80%가 연료용이 아닌 석유화학제품 원료용이므로 석유화학산업을 에너지다소비산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넷째, 정부는 정유업계가 정부의 시책에 부응하여 원유 탐사 및 유전 인수 등의 상류부문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금융, 세제상의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와 함께 친환경에너지세제개편을 통해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을 육성하고 에너지산업의 녹색화를 촉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조세정책의 근본적 문제점은 세수확보, 물가안정, 산업지원 등의 편의적 목적 하에 조세구조가 설정되었고 에너지 사용에 따른 외부효과 (환경오염, 교통 혼잡, 에너지 안보)를 고려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고려하는 에너지 조세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여섯째, 시장 감시자로서 소비자단체의 역할은 필요하다. 소비자는 정유업계의 가격담합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해명보다는 소비자 단체의 주장을 신뢰하게 된다.
그만큼 소비자단체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비자단체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지양하고 사실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서 비판해야 한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잃은 소비자단체는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이런 점에서 소비자단체도 자체 연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 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납득할만한 근거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다.

맺는 말
우리는 평소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사물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석유산업이 자유화되기 이전에는 국내 정유업계가 정부의 규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간 유착에 대한 국민의 감시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국내정유업계의 당면 과제는 정유업계 자체의 구조 조정이라고 생각된다. 지구온난화가 세계인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저탄소 녹색성장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된 지금 국내 정유업계는 1990년대 말의 석유산업 자유화정책 시행 이후 또 다시 변화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국내석유시장도 이제는 국제시장과 연계되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석유 유통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변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