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분석]
자동차 연료의 현재와 미래
글·최상원|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
인류 문명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 보급되는 시점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다.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의 발명이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고 석유를 이용한 내연기관이 20세기 기계문명을 꽃피운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의 발전은 자동차산업의 비약적인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때문에 자동차산업에 있어 석유는 연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석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자동차산업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석유가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석유 가격이 상승하면 제조원가의 상승으로 비용부담이 커질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와 유지비 상승으로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류의 상대적 가격체계는 자동차 수요 패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유가가 급등하면 자동차의 경제성에 대해 소비자의 관심이 부쩍 높아져 LPG차나 디젤차의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는 소비자가 자신의 경제 여건에 따라 사용 에너지에 대한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석유가격의 변동이 자동차의 판매 경향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석유는 얼마 남지 않았다. 매장량 가운데 1/3 정도만이 경제적으로 이용 가능한 석유는 향후 40년 정도가 지나면 고갈될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의 유가 급등 과정에서 본 것처럼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 하는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내연기관을 이용하는 차는 석유 의존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연비 기술을 개발·적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신개념의 대체연료를 이용한 동력 시스템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한편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문제도 미래형 대체연료 자동차의 개발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차량 증가는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함과 동시에 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해 왔다. 자동차는 대기오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CO2의 주 배출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고연비 자동차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등 미래형 대체연료 자동차의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을 개선한 고연비 자동차
고연비 자동차를 위한 대표적인 기술로는 1996년 미쓰비시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가솔린 직접분사 방식과 커먼레일로 대표되는 디젤 직접분사 방식이 있다.
가솔린 직접분사 방식은 기존 엔진보다 적은 연료를 사용하여 연소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희박연소(lean burn) 엔진의 원리와 거의 같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직접분사 방식을 적용할 경우 배기가스의 정화가 어려워 실용화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획기적으로 진일보한 전자제어 기술과 배기가스 절감 기술로 인해 양산이 가능해졌다.
디젤 직접분사 방식은 특히 서유럽을 중심으로, CO2를 적게 배출함으로써 수해 등 자연재해의 원인인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는, 고연비가 가능한 환경친화 차량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폭스바겐이 주도한 3리터카(3ℓ의 연료로 100km 주행)는 고연비차의 개념을 한단계 끌어올렸는데, 99년 폭스바겐의 루포(Lupo)를 필두로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다. 3리터카는 순수한 내연기관만으로도 이정도 수준의 고연비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는 1ℓ로 100km를 달릴 수 있는 1리터카의 개발이 한창이다.
전기자동차
대체연료 자동차의 원조격인 전기자동차는 1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만큼 역사가 유구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솔린자동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1990년대 들어 배터리 제조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전기자동차의 장점은 무공해이며 소음이 적고, 운전과 유지보수가 쉬우며, 심야전력을 이용하여 충전할 수 있어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수력, 화력, 풍력 등 어떤 형태의 에너지원으로부터 발생된 전기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1997년 GM이 전기자동차 EV1을 처음으로 양산한 뒤 혼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전기자동차를 잇달아 출시하며 전지차 붐을 일으켰을 때, 역설적으로 전기차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성능 대비 높은 가격, 충전 후 짧은 운행거리, 충전소 부족으로 인한 불편 등이 그것으로, 이로 인해 기대한 만큼의 소비자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결국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는 소형, 고효율의 배터리와 이를 충전, 교체, 회수할 수 있는 인프라의 확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하이브리드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는 현재 가장 현실적인 고연비· 대체에너지 기술로 각광 받고 있다.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을 조합한 하이브리드는 3리터카에 필적하는 고연비를 자랑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자동차는 동력원의 연결방식에 따라 시리즈(직렬) 방식과 패럴렐(병렬)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시리즈 방식은 엔진으로 발전기를 구동하여 발생한 에너지를 이용, 모터가 바퀴를 구동하는 방식이다. 패럴렐 방식은 시내에서는 전기모터를 구동하여 공해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배터리에 축적된 전기에너지가 완전히 소모되었을 때는 내연기관으로 운전을 하는 방식이다.
하이브리드자동차는 어떤 방식이든 기존의 내연기관을 이용할 수 있어 충전소 등 인프라를 새로 구축할 필요가 없으며, 충분한 인프라로 인해 배터리의 용량을 줄일 수 있고, 이는 결국 차량 무게의 감소로 이어져 연비 절감 효과도 꾀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하이브리드자동차의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2002년에 J.D.파워가 실시한 미국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현재 3천 달러 수준인 하이브리드차와 일반 가솔린차와의 가격차가 1천 달러 이내로 줄어든다면 그 정도의 비용은 부담하고서라도 하이브리드차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소비자가 조사 대상의 60%에 달했다. 이렇게 준비된 소비자들이 급증하자 많은 메이커들이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연료전지 자동차
수소와 산소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기 에너지를 만들고 부산물로는 물만이 배출되는 연료전지차는 대체 에너지 차량 개발의 최종 목표로 인정 받고 있다. 연료전지차가 미래차의 해답으로 인정 받고 있는 이유는, 화석연료인 석유가 아니라 거의 무한대로 공급이 가능한 수소를 연료로 쓴다는 것과 완전 무공해 자동차라는 점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 내연기관의 효율이 20∼25% 정도인데 비해 연료전지차는 55∼60%에 달하는 고효율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조비용이 내연기관 대비 10배 이상 필요하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이 때문에 각 메이커들은 기술을 공유하고, 비용을 분담함으로써 개발 및 제작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메이커간 제휴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만약 어떤 메이커가 연료전지차의 제조비용을 현재의 내연기관 제조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면 그 메이커는 자동차산업에 있어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메이커가 사용하는 방식은 전세계적인 표준으로 인정될 것이다. 현재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가 개발의 선두에 서 있다.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미래차 개발 동향
최근에는 미래형 대체연료자동차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연료전지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내연기관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스템을 가진 자동차라야 미래차로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
전체적으로는 연료전지차가 궁극적인 미래차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연료전지차가 지금의 가솔린차 수준으로 대중화되기까지는 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어서 그때까지 연료전지차를 대신할 미래차를 준비해야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미래차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지역별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연료전지차 개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은 연료전지차의 조기 상용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향후 5∼8년이면 소규모나마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다른 친환경 미래차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물론 여기에는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일본에 선점 당한 후 연료전지차 시장을 가장 먼저 장악하겠다는 전략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료전지차의 상용화 시기에 대한 유력 기관들의 비관적인 보고서가 이어지면서 포드가 올 하반기에 하이브리드차를 출시하기로 하는 등 현실을 인정한 빅3의 전략 수정도 감지되고 있다.
유럽은 디젤차 중심이다. BMW가 수소 직접 연소 방식 차량 개발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연료전지차 개발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폭스바겐, 뿌조 등 유럽의 맹주들은 고성능, 고연비, 저공해가스 배출의 디젤차를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인식하고 있다.
서유럽의 디젤승용차 비중은 지난해 43%에 달했으며 고급차의 대명사 벤츠에도 디젤엔진이 탑재된 지 오래다. 유럽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CO2 배출량이 적은 디젤차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다.
일본은 하이브리드의 선두 주자이다. 도요타, 혼다에 이어 최근에는 닛산까지 하이브리드차의 개발과 보급에 뛰어 들었다. 특히 1997년 프리우스를 시작으로 하이브리드차의 양산을 선도한 도요타는 2005년에 세계 판매를 30만대로 책정하고 있을 만큼 하이브리드차의 보급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도요타는 닛산, 포드 등 경쟁사에도 거리낌 없이 기술을 이전하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이브리드 기술 표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 메이커들은 앞선 하이브리드 기술로 친환경 미래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는 한편, 하이브리드차 기술이 연료전지차의 개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연료전지차의 상용화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개발 과제의 하나인 미래형 자동차 개발 부문에 연료전지차를 선정했다. 물론 하이브리드차 개발 등도 포함되어 있으나 연료전지차 개발이 주 과제인 만큼 우리나라도 미국과 비슷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예산의 배분에서도 연료전지차 부문이 훨씬 많은데 이미 상당 부분 양산이 진행된 하이브리드차보다 대중화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고연비를 위한 직접분사나 희박연소엔진 등은 이미 상용화되었으며 하이브리드와 태양광에너지 이용 기술, 연료전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연구도 선진 메이커에 견줄 만큼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와 미래차 전망
현재 자동차 산업은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바로 고연비 기술의 확보와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활용이며 이의 성공 여부가 21세기 자동차산업 구조 재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관련 기술 개발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G7 프로젝트에 이어 차세대 자동차산업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개발 과제의 하나로 미래형 자동차 개발을 선정하여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동차 연료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유지해 온 석유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메이커들의 연구 결과가 속속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지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몇몇 분야에서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메이커들은 석유의 고갈에 대비해 최고의 에너지효율을 추구하고 대체연료를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메이커만이 진정한 자동차산업의 리더로서 다시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유럽의 디젤승용차 비중은 지난해 43%에 달했으며 고급차의 대명사 벤츠에도 디젤엔진이 탑재된 지 오래다. 유럽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CO2 배출량이 적은 디젤차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