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동간 교류 활성화가 필요하다

윤용석 |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사무관

1. 우리에게 중동이란?

중동이란 단어는 학계와 언론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이 단어가 생겨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은 식민정책을 펼치기 위해 아시아를 전략적으로 근동, 중동, 극동 세 지역으로 구분했으며, 1918년 오스만 제국의 해체와 함께 근동이란 단어는 차츰 사라지면서 중동은 근동까지 포함하는 즉, 발칸과 지중해, 걸프 및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지역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특히 가까운 관계에 있는 지역은 걸프 지역인 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에게 있어 중동이란 이슬람, 원유, 사막, 화약고, 테러, 실크로드 등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인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이 중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알려고 하는 경우는 드물며,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공간적 거리만큼 멀고 생소한 지역이 중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석유산업과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으면 중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거니와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1월 제4차 한-사우디 석유광물위원회 개최차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서울에서 제3차 한-카타르 에너지협력위원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중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중동 여러 나라들과 한국과의 협력 관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필요성이 있으며 앞으로의 협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의 경험 및 생각이 미미하나마 향후 중동과 한국의 협력 관계 활성화에 기여하고 양국 국익 증진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가까운 지역, 중동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거리에 비해 중동은 우리나라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가까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에 이어 세계 제11위의 에너지 소비국으로 원유, LPG, LNG 등 국내 에너지 소비의 96%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중 8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의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은 비단 한국의 경제발전 뿐 아니라 물가안정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중동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정학적 불안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1979년 이란 회교혁명 및 이란-이라크戰으로 촉발된 1, 2차 석유파동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큰 상흔을 남겼으며, 근래에는 1990년 걸프전쟁, 이란 핵문제 등으로 야기된 고유가로 인해 한국 및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 것이다.

또한, 중동지역은 세계 최대의 플랜트 시장으로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은 중동지역의 석유화학공장, 발전소, 담수플랜트에서 하수처리시설,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설 프로젝트들을 수주하여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국내 조선업체들은 중동 국가들이 발주하는 유조선, LNG선 등 대형 선박을 수주하고 있으며, 우리기업들은 자동차, 전자기기 등의 공산품을 중동 지역에 수출하여 국내 고용 및 투자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중동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양 지역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향후 상호 협력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동 국가들에 차량, 철강제품 등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며 중동 국가들은 한국에 에너지, 석유화학제품 등을 주로 수출한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발전소 등 중동 국가들의 사회 인프라 건설해 주고, 한국기업들은 한국에서 생산된 플랜트 기자재 등을 수출한다. 이러한 상호 보완적 경제 구조로 인해 경제분야에 있어서의 상호 협력 관계는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 하에도 중동 국가들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한-GCC FTA가 체결될 경우 양국간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3. 먼 지역, 중동

이러한 중동지역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중동지역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것이 현실이다.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미주, 구주 등 타 지역에 거주하는 인원에 비해 턱없이 작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중동인들도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가 한국과 중동 국가들은 문화·지리적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인데 이러한 격차가 양 지역을 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현지 기업이나 정부의 초청장이 있어야 하는데 제4차 한-사우디 석유광물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의 초청장을 발급받는 데에는 약 한 달의 기간이 소요되었으며, 출장 직전까지 위원회에 참석하는 인원의 명단이나 구체적인 회의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아 위원회를 준비해야 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한국인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나 술은 먹을 수 없고 닭과 양고기의 경우에도 일정한 절차에 따라 도축된 신성한 음식인 “할랄(halal)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또한 여성은 현지인 뿐 아니라 외국인의 경우에도 신체 노출을 막기 위해 “아바야”라는 베일을 걸쳐야 하며 외출시에는 남성이 동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점들은 한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으로서는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중동 국가들은 왕족이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적인 부문에서 실세를 잡고 있는 왕정 국가들이 많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겨울에도 30도가 넘는 고온이 유지되고 습도가 낮아 한국인이 현지에 적응하기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다행히 UAE, 바레인 등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들은 서구와의 교류 확대 및 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적용되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중동 지역의 문화는 생소하고 어려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중동인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음식 중 중동인들이 접할 수 있는 음식은 채소, 과일을 제외하고는 드물며 한국에서는 무슬림들의 의무사항인 하루 5번의 예배를 드릴 장소도 마땅치 않다. 또한 노출을 꺼려하는 중동 여성들이 한국에서 아바야를 착용하고 다닐 경우 집중되는 한국인들의 시선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며, 미니스커트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한국 여성들이 생소하고 이해가 안될 것임은 틀림이 없다. 게다가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치 않은 중동인들은 한국의 다급한 문화에 익숙치 않을 것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며 겨울에는 영하 10도를 하회하고 여름에는 습도가 높은 한국의 기후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으로 생각된다.

4. 중동, 멀게만 느낄 것인가?

과거 중동 국가들과 한국은 정치적·역사적·사회적으로 매우 소원하였으며, 국제 정치무대에서 중동 국가와 우리나라는 완전히 별개의 입장을 취해왔다. 서로간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다행히 우리나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 장관들은 중동을 자주 방문하고 있으며, 중동 국가들의 국왕, 왕세자, 각부 장관 등 주요인사 방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도 중동 국가들은 한국 입장을 지지하고 한국은 중동 국가들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등 상호 협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고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중동의 문화, 지리적 특성이 상이하다고 해서 더 이상 중동을 멀게만 느낄 수는 없다. 금번 사우디 및 카타르와의 위원회를 준비하면서 이 국가들의 가부장적 사회질서, 왕정체제, 가족중심, 체면중시, 하인문화 등은 우리나라의 과거인 조선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리들이 사극이나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조선의 문화는 현재와 다르고 현대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만 큰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아직 우리 생활에 남아 있는 관습과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 및 배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과의 문화 격차도 이와 마찬가지 문제라고 생각된다. 중동 국가들은 황량한 사막이 대부분인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종교와 생활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역이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코란의 가르침에 의해 모든 인간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믿으며 서두르는 사람을 경박하게 생각하는 아랍인들에게 한국식 “빨리빨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며, 코란의 가르침에 의해 정화된 깨끗한 음식만을 먹을 수 있는 무슬림에게 더러운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고기를 먹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5. 중동, 어떻게 가까워질 것인가?

중동지역을 자주 방문한 기업인들은 “중동국가에서는 돈을 아무리 줘도 차량 1대 임차하기 어렵지만, 친분 관계가 형성되면, 100대 아니 1,000대도 무상으로 임차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금번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시에도 방문 3일전에 대표단 명단에 한명이 추가되어 비자 발급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의 상무관님과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현지 정부인사의 전화 한통화로 비자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을 보고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한 적이 있다. 이처럼 서로의 문화가 다른 만큼 지금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상호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중동은 선뜻 우리 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한국과 중동의 경우 에너지, 건설·플랜트, 조선, 공산품 등 경제 분야는 교류가 활발하지만 정치·사회·문화 등의 관계는 소원한 실정이다. 그러나 양국간 상호 이해를 통한 실질적·지속적 협력관계는 단순히 경제 교역량의 증가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지속적인 협력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의 기초 하에 이루어지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경제 분야 뿐 아니라 문화, 인력 교류 등 다방면에 걸친 상호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중동 국가들과 실질적·지속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 지역간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중동 전문가 양성이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금번 2차례의 위원회를 개최하기 위해 한-아랍어 통역을 구하려고 한 적이 있다. 한-사우디 석유광물위원회 때는 근 한달 동안 현지에 진출해 있는 상무관, 코트라, 현지 기업인들을 통해 통역을 구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아랍어를 구사하는 통역을 구하지 못해 한-영어 통역으로 대신한 적이 있으며, 한-카타르 에너지협력위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그만큼 중동에 정통한 한국인이 희소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향후 양국간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부족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우리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정부와 운영하고 있는 에너지협력위원회 등 정부간 협력채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정부간 위원회를 통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타국 정부를 상대로 애로사항 및 현안을 효과적으로 협의할 수 있으며 현지 정부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연고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고 정부가 프로젝트, 선박 수주 등에 있어 상당 부문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동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간 위원회를 통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정부 및 민간 고위 인사와의 개인적 친분을 쌓는 것도 현지 기업인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민간기업과 정부간의 정보 공유 및 교류도 활성화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금번 한-사우디아라비아, 한-카타르 에너지협력위원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협력 의제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바 있으며, 이는 타 지역과의 협력위원회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기업인들이 개별 국가에 대한 정보가 더 풍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지에서 겪는 어려움은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한 경우도 있을 것이나 정부간 협력 채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얻거나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카타르 에너지협력위원회 개최시 카타르 측에서 제안한 “카타르의 LNG선을 활용한 한국의 물 수출 방안”은 좋은 협력 의제로 생각되며 이러한 의제들은 정부 자체적으로 도출하기는 어려우며 LNG 수입사나 조선사 등 민간 기업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제안해 줄 가능성이 높은 의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우리부는 정부-민간 Matching으로 “산유국 주요인사 초청”, “전문가 기술연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산유국 국제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나 중동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며 예산도 그 중요성에 비해서는 미미하여 동 사업을 활용하여 다방면에 걸쳐 중동국가와의 구체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금번 제3차 한-카타르 협력위원회 때 카타르 측은 대한석유협회에 에너지 기술교류 컨퍼런스를 개최할 것을 제시하였으며 내년 카타르 및 한국에서 에너지 업계간 컨퍼런스를 개최할 것을 협의한 바 있다. 이러한 민간 차원에서의 컨퍼런스 개최, 기업간 인력 교류, 투자유치 상담회 개최 등의 노력은 정부간 교류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에너지 공급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한 에너지 수급 안정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 뿐 아니라 중동국가들은 우리나라와 상호 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상호 협력의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지속적인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양 지역간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중동 지역이 한국에 더욱 가까운 지역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향후 한-중동간 실질적·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