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과 에너지소비자의 권리

최기련 |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요즈음 우리나라 에너지부문의 모든 가치평가기준이 “녹색”인 것 같다. “녹색”으로 포장한 모든 정책과제는 “좋은”것으로 간주되는 경향마저 우려된다. 신-재생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에는 경제성을 초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태양광발전 보급 시 지급되는 평균 발전원가의 5배 이상인 보조금의 추가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정부시책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태양광 국가보조는 모든 전기소비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 부담하는 전력기금이 그 재원이라는 사실마저 망각되고 있다. “녹색”이라는 미명 아래 전기소비자, 즉 모든 국민들의, 더 많은 희생강요 되는 셈이다. 자칭“녹색”기업 주식가격도 비정상적인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언젠가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폭락하기 마련이고 이 경우 소액 투자자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과도한 녹색열풍을 경계하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에너지계를 녹색전략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녹색”열풍은 나쁜 것인가? 물론 단연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녹색열풍은 작년 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 제시한 녹색성장(Green Growth)전략에서 유발되었다. 이 전략 도입 논거는 1)지구촌 전체의 궁극적 해결과제인 지구온난화문제에 대처하고 2) 2008년 중반까지 극성을 보였던 에너지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3)나아가 글로벌 경제위기 대처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 녹색성장전략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최근 지구온난화문제는 인류생존의 최대 위협요인이라는 점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기온. 0.74℃ 상승하였다. 금세기 말까지는 최대 6.4℃ 상승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결과 가뭄, 홍수, 생태계 파괴가 확대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최대 세계 GDP의5~20%/년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기온도 지난 100년 간 1.7℃ 상승하여 세계 평균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에 지구온난화대처는 글로벌 공동선(善)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도 갈수록 중요한 해결과제가 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경제규모 세계 13위인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는 세계 11위, 석유 소비는 7위이다. 전형적인 에너지 낭비국가다. 여기에다 국내자원부족으로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여 세계 화석연료부족과 이에 따른 시장불안에의 대응능력이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예컨대 유가상승에 따른 성장감소, 물가상승, 국제수지 악화 차원에서 선진국들 중 가장 불리한 수준에 있다. 이는 에너지취약성이 곧 바로 국가경쟁력 약화로 연계됨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존대응방식은 기본적으로 과소비에 대한 자성이었다. 예컨대 "선진국, 에너지 줄일 때 한국만 나 홀로 펑펑"이라는 식의 문제진단에 따라 과소비 풍조를 에너지 문제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과잉 냉난방” “나 홀로 자가용” 등이 우리 에너지문제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이유로 일반 소비자를 에너지문제유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그 논리구성의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의 절반 이상(2008년 기준 58%)은 산업 부문에서 쓰인다. 제조업 에너지의 80%를 삼키는 석유화학·철강금속 등 에너지 다소비산업 비중이 선진국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이와 함께 에너지 투입 대비 부가가치 창출이 높은 금융 등 첨단 서비스산업 비중은 작다. 따라서 산업구조의 개편이 불가능한 단기 측면에서는 에너지과소비(?)는 불가피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진국이 꺼리는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이뤘다. 전형적인 '후발자의 이익'을 얻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에너지가격구조는 정상적인 시장논리 아래서 무조건적인 에너지절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OECD 통계에 의하면 실질구매력 기준 우리나라의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기료도 실질가격 기준 비싼 편이다. 값싸다는 우리 에너지 가격은 명목환율 기준일 뿐이다. 따라서 추가 가격인상은 소비자의 일방적 희생과 민간 경제의 국제경쟁력 훼손 우려를 낳는다. 가격을 더 올리면 에너지 낭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명제도 적용하기 힘들다.

이러한 여건 아래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동안 글로벌 경쟁심화로 우리 고유의 수익창출모델을 정립하지 않고는 국제경쟁력 유지, 보완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특히 요소투입형, 수출 위주 제조업 중심 성장전략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된다는 걱정도 많았다, 여기에다 범지구적인 지구온난화대처 노력의 결과 화석연료 중심 경제구조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이에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성장“패러다임”창출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녹색전환”(Green Conversion)이라고 우리 정부는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경제내부의 가치창출체계를 저탄소형으로 전환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신규시장을 창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1) 탈(脫)석유,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적응과 에너지자립전략, 2) 녹색기술, 녹색산업개발/육성 등 신 성장동력 창출전략 3) 녹색생활혁명 등 글로벌녹색전략 선도 전략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후변화 적응형 에너지자립전략이 성공하지 못 하면 나머지 전략이, 적어도 단기간 내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자립이 녹색전략 성공의 분명한 전제조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에너지라는 재화의 특별하고 괴팍한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는 필수 공익재적인 특성에다 중간투입재적인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기존 주류 경제이론에 의거하면 시장실패가 당연하다. 가격기능, 시장논리의 적용이 쉽지 않다. 이 결과 기술혁신 역시 쉽지 않다. 규모의 경제효과가 기술혁신효과를 압도한다. 한 마디로 기술혁신, 산업개혁, 새로운 패러다임 형성이 쉽지 않다. 이런데도 에너지자립을 기반을 하는 우리의 녹색성장전략이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성공을 확신할 수 있을까?

불행이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녹색전략은 이미 정부의 장기투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민간경제부문도 정부전략에 충분히 협력하고 있다.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부작용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명히 해야 할 사항은 지나치게 소비자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저항, 이것이 에너지자립, 즉 녹색전략의 성공을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에 의한 에너지 소비를 죄악시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 행동의 변화만 강요하기보다 에너지효용비용을 줄이는 국가인프라 개혁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석유업계의 책임 역시 크다. 국가외환수입의 절반 이상을 원유수입에 쏟아 부어야 하였든 70년대식 사고방식에 따라 석유소비를 무조건 죄악시하는 사회관념 탈피 책임이 석유기업에 있다. 따지고 보면 수입석유를 바탕으로 우리 선진경제체재가 형성되었다. 중국과 같은 석탄 공해를 겪지도 않았다. 금세기 말까지는 대체기술의 한계, 시장구조변화의 지연 등으로 세계주종 에너지가 석유 등 화석에너지인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화석연료 중심 국가에너지시스템비용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은 석유를 중심으로 한 소비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석유소비가 에너지 낭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비난받아야 하나? 석유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석유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에너지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녹색전략만이 그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