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안정기 해외석유 확보의 기회이다

김동엽 | 경희대 무역학부 교수

지난 연말 40달러이하로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글로벌금융위기 완화 및 중국의 수요증가로 최근 60달러 가까이 상승하였다. 세계경기회복 진행속도의 완만 및 OPEC 감산 등의 영향을 고려할 때 국제유가는 다시 하락하기 보다는 당분간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석유의 안정적 공급은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에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부문은 가격 신축성이 매우 약한 동시에, 불안정성 및 위기가 상존하고 있는 부문이다. 따라서 석유부문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은 비신축성과 불안정성을 감안하여 위기에 대한 대응정책을 사전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이며 신뢰성있는 해외석유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해외석유확보를 위한 자주개발률 제고, 에너지 이용 효율의 극대화,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여 왔다.

특히 2005년 이후 석유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활발한 자원외교를 벌이고 중장기 기본 에너지정책을 다룰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신설하고 중장기 에너지자주개발율 확보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석유 및 가스의 자주개발률을 2005년 4.1%에서 2030년에는 35% 달성을 목표로 해외석유확보에 총력을 다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석유가격이 하락하자 정부나 국민이나 석유의 중요성에 대한 열기가 시들해지는 것 같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세계경제위기가 내년 이후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고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면 석유값이 다시 뛸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높은 유가는 또다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석유가격 변동에 큰 타격을 받기 쉽다. 다른 나라에 비해 1인당 에너지소비량이 많고 에너지효율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석유가격의 급등은 국제수지 악화, 외환시장 불안정, 경기침체로 이어져 우리경제의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과거 70, 80년대 경기침체, 2000년대 이후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석유가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석유는 한번 소비하면 다시는 재생이 불가능한 고갈성자원이다. 고갈성자원은 특성상 희소성 증가로 사용하지 않아도 미래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가격은 높아지게 되어 있다. 지난 2005년까지 10여 년 동안 석유가격이 하향 안정적이었던 것은 석유시장 환경이 생산국들에게 불리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석유대책은 고갈성 자원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성에 입각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석유정책은 가격 인상, 소비 억제, 해외석유개발 확대 등을 번갈아가면서 되풀이하는 과거의 대책보다 에너지효율증대, 해외석유 확보와 같은 기존 대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석유는 2005~2008년을 정점으로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며, 수요량은 증가하고 또 석유채굴은 점점 더 어려워져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석유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태양열이나 바이오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문제는 에너지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오늘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한편, 강대국간 자원확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자원확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 유럽과 일본 등 강대국들도 자원확보경쟁에 본격 가세하는 있다. 1980년대 초 이후 약화되었던 자원보유국들의 자원무기화 정책도 2000년 이후 신흥개도국의 자원수요 급증, 이슬람권의 반미성향 등으로 다시 강화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자원을 확보함에 있어 사용하는 전략수단이나 활동주체가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국가안보와 외교전략을 앞세워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금, 정보, 기술력을 구비한 영미계 석유 메이저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국들은 러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자국기업을 메이저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중동, 아프리카와 남미 등 자원 보유국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데, 국영 석유회사들이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공적개발원조, 자원보유국과의 FTA 체결 및 첨단 기술 제공 등을 활용해 자원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종합상사와 2006년 탄생한 인펙스가 정부 지원하에 자원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자원개발에 착수했으나, 정책기조의 일관성 부족과 외환위기의 등으로 해외자원 개발사업이 진퇴를 반복한 결과 석유 및 가스 자주개발률은 2005년 4.1%로 프랑스(95.0%)나 중국(14.0%)은 물론이고, 일본(9.8%)에게도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일관성 있는 경영전략 추진과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쉽지 않다.

한국은 해외자원확보경쟁에서 크게 뒤처져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해외석유확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해외석유개발을 주도하되,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본식 접근방식이 한국에게 바람직하다. 성공적인 석유확보를 위해서는 첫째, 자금력을 가진 자원실수요기업, 기술력을 구비한 공기업, 비즈니스 능력을 갖춘 종합상사 등이 컨소시엄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되, 궁극적으로 민영화와 M&A를 통해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석유개발 전문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둘째, 중동지역은 지분참여,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신흥개발권은 사업권 확보 등 자원매장량과 경쟁강도에 따라 차별화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우수한 제조업 경쟁력을 활용해 석유개발, 건설, 플랜트 및 정보통신 등을 묶은 패키지형 개발전략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