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차 생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하원준 | 현대오일뱅크 에너지환경정책팀 차장
사람이 차(茶)와 함께한 지는 이미 아주 오래다. 길게는 중국 삼황오제 가운데 신농씨가 독초에 중독되었을 때 찻잎으로 해독했다는 얘기가 있고, 삼국지에는 제갈공명이 남만 맹획 정벌 때 병사들의 풍토병을 차로써 다스렸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중국 운남의 남나산 지역에서는 제갈공명이 산 정상에 꽂은 지팡이가 차나무가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를 차의 시조로 받들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고승이 차를 우려 왕에게 바쳤다는 대목이 삼국유사에 있으니 차문화가 들어온 지는 삼국시대보다 훨씬 이전일 것이다.
현대화와 함께 청량음료와 커피에 밀려나긴 했지만 차의 위치는 예나 지금이나 확고하다. 일상다반사라고 하듯이 찻상을 사이에 두고 차를 함께 마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의 일부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흔하디 흔한 모습인 것이다. 이제 웰빙 바람이 불면서 차가 다시 건강음료의 대명사가 되어 여기저기 차가 아닌 대용차(代用茶)까지도 저마다 차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생활의 당연한 일부로서의 차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우리 주변의 차들
차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적이 없다면 그냥 동백나무를 떠올리면 된다. 차나무와 동백나무는 생물학적으로 같은 차나무과 카멜리아(Camelia)속에 속하며 모든 면에서 아주 비슷한 모습이다. 꽃과 열매의 모양도 차나무가 약간 작을 뿐, 아주 흡사하다.
차나무의 종류는 약 3천종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식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은 3백종 전후이다.
차라고 부르려면 반드시 차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차나무 잎을 따서 건조시키고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차가 되는데 중국에서만도 지역별로 가공, 음용 방법이 달라 수천가지의 차가 있고, 차 이름에는 기문홍차, 안계철관음, 동정오룡, 무이수선, 사봉용정, 운남보이처럼 유명 산지의 지명이 함께 붙어 다닌다. 차의 분류는 우렸을 때 탕색에 따라 백차, 황차, 청차, 녹차, 홍차, 흑차로 나누고, 발효 여부에 따라 발효차, 반발효차, 비발효차, 발효 시점에 따라 전발효차, 후발효차로 구분한다.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녹차류는 비발효차이고,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홍차는 전발효차에 속한다. 오룡차는 반발효차이다.
전통적인 보이차(普洱茶)는 흑차, 후발효차에 속하지만 조금 다른 방법으로 발전하여 전발효나 녹차 같은 보이차도 있다. 보이차는 보통 뭉쳐서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데 넓적한 모양의 병차(餠茶), 납작한 벽돌모양의 전차(磚茶), 주먹 모양의 타차(沱茶)가 일반적이고 버섯모양 등 다른 형태도 있다. 뭉치지 않은 것은 산차(散茶)라고 한다. 찻잎을 채취하는 시기에 따라서도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데 청명 전이면 명전차, 곡우 전이면 우전차, 봄이면 춘차, 가을이면 곡화차 등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여름과 겨울에는 찻잎의 품질이 낮아 상품화 하지 않는다.
<보이차의 종류 : 병차. 전차, 타차>
왜 보이차가 좋은가?
좋은 보이차를 처음 마셨을 때 그 특별한 맛과 느낌은 누구에게나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그 맛과 느낌 때문에 뚜렷하게 각인된 기억을 쫒아 좋은 보이차를 구하고, 또 기다리고 하는 것이다. 보이차는 세월이 흐를수록 끊임없이 진화하며, 긴 세월 인내하며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응분의 보상을 내릴 줄 안다. 이는 다른 차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쁨이다.
보이차는 또한 어린아이와 같다. 어리고 좋은 햇차를 구해 좋은 환경에서 보살피고 잘 기르면 훌륭한 노차(老茶)로 거듭나지만, 잡내 풍기는 습기찬 곳에 내버려두어서는 이내 비뚤어지고 마는 것이다.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실 보이차를 비롯한 차의 효능은 건강, 다이어트, 숙취해소 같은 화학적인 작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일 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혼자일 때는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데 차의 의미가 있다. 차를 마실 때 상대방을 중시하는 표현이 수여좌(誰與坐), 바로 ‘누구와 함께 앉았는가’이다. 우리가 인간관계나 코칭 교육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지금 이 시간,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사람에게 중심을 맞춘다면 차야 어떤 차인들 무슨 상관이랴. 이를 일러 불가(佛家)에서 차선일미(茶禪一味)라고 하는 것일 게다. 바쁜 세상에 차선일미가 따분한 주제라면 나에겐 그저 휴일 내내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차방에 둘러앉아 보이차 마시며 나누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얘기들이 즐겁기만 하다.
가짜 차와 진짜 차, 좋은 차와 나쁜 차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짜차는 없다. 그러나 나쁜 차는 있다. 자기의 기준과 기호, 취향, 분수에 맞는 차가 가장 좋은 차다. 가족들의 입맛에도 맞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근래 차마고도(茶馬古道) 같은 다큐멘타리가 제작되고 나서 보이차에 대한 인지도가 늘고, 보이차를 즐기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난 듯하다. 이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보이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막연한 신비감을 갖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좋은 원료를 써서 정통 제법으로 만든 보이차가 적당한 온도와 습도 하에서 오래 묵으면 진화하여 독특한 향과 맛이 나타나는데 이를 노차(老茶)라고 하며, 30년 이상된 노차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접근이 어려울 만큼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된다. 이것이 세간에서 보통 말하는 ‘진짜 보이차’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개발된 속성 발효방법이 발전하여 이제는 그리 오랜 세월 기다리지 않고도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보이차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속성 발효된 보이차를 숙차(熟茶)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생차(生茶)라고 하는데 여기서 진짜, 가짜 논란이 생긴다.
전통적인 방법에 의한 오래된 노차만을 진짜라고 한다면 숙차는 가짜일 것이지만, 이제는 숙차도 뚜렷한 계보와 품질과 기술로 쌓아올린 명분을 갖게 된지 오래이므로 이런 진위논란은 의미 없다. 다만 적당히 산화처리한 숙차는 노차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하여 값싼 숙차를 노차로 속여서 판매하는 비양심 상인들이 있고, 심지어 유해한 화공약품을 쓰거나 그야말로 썩은 차에 ‘명품’ 노차의 포장지만 둘러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마저 있으므로 자기 자신이 확실한 판별능력이 없다면 무작정 ‘오래된’ 노차를 구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차를 발굴하여 이를 즐기는 것이 최선이고, 또 그런 차가 좋은 차인 것이다.
보이차에 투자하라?
2~3년 전 중국에서 보이차 광풍이 분 적이 있다. 유명한 차창의 제품은 나오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었고 가격은 엄청나게 올라버렸다. 요즘 그 때 그 차들이 훨씬 낮은 가격에 시장에 나온다. 거품이 걷힌 것이다. 많은 투기꾼과 상인들이 손해를 입었고, 자금사정 어려운 이들은 더욱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낸다. 그런 덕분에 요즘 나처럼 즐거운 사람도 있다.
보이차 투자를 공공연하게 권하는 얘기들도 많지만 이것도 다른 투자와 똑 같은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투자대상이 변질될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것이 문제다. 보이차 보관을 위한 ‘좋은 환경’은 아무런 신경 쓰지 않고도 쉽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차를 대신 보관해주는 창고업도 있지만 보관기간이 기약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투기목적을 떠나 스스로에 대한 투자로서 적당하게만 한다면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어느 정도 연수가 지난 노차는 결코 가격이 내려가는 일이 없다. 그러니 좋은 품질의 햇차를 잘 보관하면 나중에 비싼 값 주지 않고도 평생 훌륭한 노차를 더불어 즐길 수 있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 일이다. 단, 너무 과하게 쌓아놓지만 않는다면…..그리고 같이 사는 분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신다면…..나로 말하자면 보이차 수집이 꽤 과했던 나를 이해해준 아내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취미와 습관으로서의 차, 결국 차는 차일 뿐이다
향기로운 차향이 그리워 매일 밤 잠시라도 차방에 앉는다. 보이차 한 모금 만으로도 하루를 닫기에는 충분하고, 퇴근 길 갈증을 씻기에 모자람이 없다. 동료, 선후배들과 술 한잔 한 날에도 거의 빠짐없이 찻물을 끓인다. 고요한 가운데 그날 하루를 몇 대목 짚어보기도 하고, 책을 몇 구절 읽기도 한고, 메모지에 몇 자 계획을 끄적이기도 한다. 그 늦은 밤 시간은 적막하고 고요하지만, 또한 격렬하게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규칙적으로 가지는 그런 시간이 많은 에너지를 가져다 준다.
주말과 휴일은 사정이 달라진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차방이 붐빈다. 막내가 제일 먼저 손님이고 둘째, 첫째 역순으로 입장한다. 10년쯤 된 노차부터 숙차, 갓나온 햇차, 종목을 바꾸어 둘째가 좋아하는 오룡차 등 여러가지 차를 우려내고 애들은 호호 불면서 뜨거운 차를 홀짝 거린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맛까지도 아이들은 느낀다. 그리고 한마디씩 차평을 한다. 차방을 가득 채운 보이차들도 아이들과 함께 서서히 자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차가 내게 주는 기쁨이다. 입 안에 주는 상쾌한 즐거움 외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즐거움까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과도한 차생활로 인해 분수를 넘어서는 행동 등으로 결코 차가 사람을 넘어서도록 해서는 안된다.
간단한 차 생활을 위한 제언 - 간단한 도구와 마련 비용
보이차를 즐기려면 간단한 도구 몇가지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보이차가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어디에도 일본산이나 미국산 보이차는 없다. 못믿을 중국산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보이차나 차 도구는 ‘중국산이 진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렴하다.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인사동을 들러 자사호와 찻잔 같은 차도구를 형편에 맞게 구해놓고 잘 손질하여 깔끔한 찻상을 꾸민다면 차생활이 훨씬 즐겁고 가족간의 대화가 더 재미있어진다. 손님을 맞을 때도 좋다. 항상 화제가 있고, 새로운 구경거리도 만들 수 있다.
아무쪼록 즐겁고 유익한 차생활 이루시기를…
<다양한 형태와 재료의 자사호>
<차 도구 준비>
차 우리는 차호. 보이차 전용 자사호는 고급품은 비싸므로 2~3만원 수준으로 준비. 크기는 4인 가족 기준 150~200cc 정도. 그리고 아무 차나 우릴 수 있는 유리차호도 유용. 유리차호는 5천원~1만원 미만.
우린 차를 담아 잔에 나누어 부을 때 쓰는 다해 5천원~1만원 미만. 차 찌꺼기 거르는 걸음망과 집게 각 2천원~3천원. 걸음망 받침은 없어도 무방하나 사려면 2천원~3천원
가족 수대로 찻잔 각 2천원~5천원. 중국 경덕진이나 대만에서 나온 고급품은 고가임.
차탁(잔받침)은 각 2천원~3천원. 제작도 쉬움.
그리고 산차 덜어내는 차칙과 단단한 보이차 뜯는 보이차칼도 있으면 편리. 보이차칼은 송곳으로 대용 가능.
차판(다반)은 물받이가 있는 것으로 준비. 2만원~3만원. 대나무 제품은 너무 건조해지면 갈라지는 수가 있으니 주의.
<간단한 찻상 꾸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