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카 4대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제언
심재우 | 중앙일보 경제부문 기자
서울 잠실에 사는 박모(45ㆍ회사원)씨는 얼마 전 시청으로부터 통지서 한 장을 받고 눈을 의심했다. 프랑스 주재원 시절 중고차로 구입한 뒤 귀국할 때 갖고 온 폴크스바겐 디젤차를 폐차 처리하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연한이 지난 디젤 엔진은 대기오염을 일으키므로 서울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당부였다. 박씨는 “10여년 전부터 디젤 자동차 기술이 발달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분진이 크게 줄어 유럽에선 친환경차 대우를 받는데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국내에서는 여전히 디젤차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물리는 등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녹색성장을 위해 2013년까지 ‘그린카(Green Car) 4대 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그린카 4대강국’을 목표로 제시했고 정부는 그린카로 하이브리드차를 비롯해 클린 디젤차, 연료전지차, 전기자동차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2020년대의 주역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로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그린카 4대 강대국이 되면 750만대 중 3만대가 하이브리드차로 생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또 관련 고용은 2006년 26만 명에서 2012년 30만 명으로, 수출은 2007년의 497억 달러에서 2012년 7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약 4년 후인 2012년에는 그린카 4대 강대국이 되고 하이브리드카 국내생산 3만대, 고용창출 4만명, 수출증대 200억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그린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 때문에 디젤차에 비해 연비도 떨어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더 많은 LPG차량이 그린카로 규정되기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영후 한국보쉬 디젤사업부 사장은 촤근 ‘승용차 이용 실태와 클린 디젤 소비자 인식조사’ 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완성차 업체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한국에서 그린카란 무엇입니까. 그린카 기준이나 있나요.” 한국보쉬는 독일 기업 중 가장 많은 1억유로를 투자해 대전에 디젤 파워트레인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디젤에 대한 정부의 각종 세금 부과와 완성차 업체 홍보ㆍ판매 의지 부족으로 디젤차 수요는 급감해 공장 절반이 놀고 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디젤차가 가솔린이나 LPG차, 심지어 하이브리드차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디젤차에 환경개선부담금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세금을 부담시키고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LPG차를 억지로 친환경 차량이라고 홍보해 소비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쏘나타 2000㏄ 모델을 기준으로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따져본 결과 디젤이 각각 13.4㎞/L와 194g/㎞로, 가솔린 모델(11.5㎞/L, 204g/㎞)이나 LPG 모델(9.0㎞/L, 196g/㎞)에 비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2005년 이후 나오는 디젤차는 매연정화장치(DPF)를 장착해 연비가 뛰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 체계 등은 그 이전 기준에 맞춰져 있다. 디젤차가 환경개선부담금을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세수 감소를 이유로 환경개선부담금 폐지에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잇따른 지적에 최근에서야 이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그렇다면 그린카란 무엇일까. 한국과학재단 정동수 국책연구본부장에 따르면 그린카는 기존 내연기관에 비해 이산화탄소와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자동차를 말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것은 연료소비가 적어 효율이 높거나, 이산화탄소 배출에 유리한 대체연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유해물질 배출이 적다는 것은 생산ㆍ운행ㆍ폐차 과정에서 배출가스나 폐기물의 유해성이 적은 것으로 그린카는 고효율 친환경 자동차를 의미한다. 대략 다음과 같은 세가지 면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효율이 높은 자동차에 대해서 살펴보면 폴크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회사는 하이브리드카보다 클린 디젤차의 전망이 오히려 밝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혼다차도 하이브리드카에서는 도요타에 비해 기술개발을 늦게 시작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도요타가 주요 핵심기술을 먼저 선점하여 특허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이것을 피해 둘러 가다 보니 성능은 떨어지고 가격은 비싸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현대자동차는 혼다보다도 더 어려운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시내 주행시 하이브리드카는 전기모터의 도움으로 효율이 높지만, 한적한 국도나 고속도로에서는 디젤차가 효율이 높으므로 하이브리드카가 디젤자동차보다 오히려 평균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둘째, 이산화탄소 배출에 유리한 대체연료에 대해서 살펴보면 경제성과 원료 수급 등 국내 여건에 맞게 선택되어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면에서 매우 유리한 바이오연료는 양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하지 못하지만, 세계시장 진출과 국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라도 실용화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식용 곡물 원료보다 목질계 원료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국내 경작 가능성 및 경제성 등을 고려해서 수입과 국내 생산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유해물질 배출이 적어야 한다. 운행 중인 상태에만 국한하지 말고 자원개발부터 최종 폐차까지 총체적으로 친환경성을 검토해야 한다. 즉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의 경우 전기나 수소의 생산, 배터리 등의 페기물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무공해자동차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과거의 잣대로 LPG차는 그린카이고 디젤차는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LPG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연료를 활용하기 위해 한때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LPG가 모자라 수입해야 하고, 경유는 남아서 수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여건상 짧은 시간내 그린카 4대강국 진입을 위해서는 클린 디젤차가 가장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디젤차에 혼합 혹은 대체가 가능한 바이오연료가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고, 하이브리드카나 수소연료전지차는 아직도 장기적인 정책으로 독자기술개발에 집중하여야 할 시기라고 판단된다. 하이브리드카는 2007년도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프리우스 18만대 판매에 비해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는 3만2500대의 판매 실적을 보였다. 그리고 2008년도 혼다차의 국내 수입가는 일반시빅 2500만원, 하이브리드 시빅 3300만원인데 비해 현대ㆍ기아차는 일반 베르나 1000만원, 하이브리드 베르나 2400만원 수준인 점 등을 감안해 볼 때 과연 누가 하이브리드카를 구입할지 의심스럽다.
클린디젤차는 최근 첨단기술 등의 적용으로 출력, 저공해성, 승차감 등이 크게 향상돼 같은 급의 가솔린이나 LPG 차에 비해 20∼30%정도 연료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후처리를 부착한 디젤엔진의 경우 가솔린이나 LPG 엔진에 비해 미세먼지도 적게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이제 경유차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아니라 이미 친환경차로 변신을 한 것이다.
따라서 경유차의 고효율성과 친환경성을 올바로 인식하여 경유차를 대상으로 한 환경개선부담금의 폐지와 경유 유류세의 인하를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경유택시의 보급을 지원하는 등 ‘고효율 친환경 경유자동차 보급 활성화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서민경제와 산업 활성화는 물론 국내 경유차시장 활성화로 세계 시장 진출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실현 가능한 고용창출도 이루어지고 또 고유가와 기후변화협약 시대라는 어려운 현실을 동시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
물론 우려되는 세수감소는 오래된 경유차 LPG 개조지원사업과 LPG 유류세 특혜 등 친환경차라는 명분으로 기후변화협약 시대에 역행되는 지원제도의 시정으로 보충해야 한다. 예산이나 기술면에서 열세인 우리나라는 상업화에 마음이 급해 설익은 모방기술로 어설픈 제품생산에 인력과 돈을 낭비하기 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전지, 전기차도 물론 개발해야 한다. 그린카에 대한 핵심원천기술 연구에 집중하여 국제경쟁력이 있는 독자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장기적인 그린카 4대강국으로의 진입 전략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카 정책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린카 정책에서 정보기술(IT) 분야가 소홀하다는 얘기다. 즉 그린카는 센서 기술 등 컴퓨터 제어 기술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의 그린카 정책은 하이브리드카와 배터리 등 일부 기술 개발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선우명호(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은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센서 기술에 주력하는 반면 한국은 배터리 등에 집중하는 편”이라며 “정보통신(IT) 기술이 녹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꼬집었다. 일본 도요타는 전기모터와 가솔린 기관을 혼용하는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유럽은 클린 디젤 분야에서 이미 앞서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카 정책의 핵심은 집안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듯 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와 그 부품 개발에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하이브리드카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이브리드카는 우선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세제 지원이 없을 경우 기존 자동차보다 30∼50% 비싸다.
현대ㆍ기아차는 올 여름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카를 출시한 뒤 내년부터는 쏘나타와 로체 등 중형 가솔린-하이브리드카를 내놓아 연 3만 대 생산규모를 갖추기로 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세제 지원을 한 대당 280만원 수준으로 8000대분에 제한할 방침이다. 나머지 2만여대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 이 차가 팔리지 않을 경우 시장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관동대 홍창의 교수는 “정부 지원책으로 시장구조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전근대적”이라며 “하이브리드 차량이 자생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기술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식경제부와 환경부, 국토해양부 등이 그린카의 개발과 보금을 놓고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대림대학 김필수 교수는 “정부의 그린카 사업추진기구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며 “오히려 서울시가 훨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